- Prologue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곳에 있었다. 투명하고 어두운 푸른빛이 감싸고 있는 세계.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잠겨있는 듯한, 그런 세계. 모든 소리들이 사라지기나 한 듯, 끝없는 고요함이 감싸고 있는 이 곳. 모든 것이 존재하며 또한 사라진 세계,
바-블루. 나는 이 곳을 이렇게 부른다. 바-블루. 깊은 어둠 속에 혼자 떠 있는 투명한 공기방울 같은 곳. 바-블루.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그 누구도 존재하는 곳. 바-블루. 나는 언젠가부터 이 곳에 있었다. 이 곳에서 청소를 하고, 칵테일을 만들고, 손님들의 말벗을 해주며, 바를 지키고 있었다.
언제부터 머물렀는 지는 이미 잊어버렸다. 아마 너무 오래된 탓이겠지. 너무나 오래돼서, 이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겠지. 아니면 기억을 잊어버리는 칵테일을 마셨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기억을 잊어버리는 칵테일이 내게 나타나서, 이봐 어서 날 마시라구, 하며 중얼거렸는지도. 그리고 난, 그것을, 어떤 슬픈 이유 때문에 마셔 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난, 오늘도 천장 레일에 걸린 컵들을 하나하나 정성들여 닦으며, 뒤편의 장식장에 놓여있는 술병들의 먼지를 털어내며, 바 테이블과 바닥, 의자들을 깨끗이 청소하며, 혹시나 레몬이 모자라지는 않는지, 리큐르가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점검하며, 다시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유 따윈 필요 없다. 난 이곳에 존재하고, 바텐더로서의 의무를 다한다. 이곳은 바-블루. 나의 공간. 무엇이든 존재하고 또한 존재하지 않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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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자그니 | 2006/01/17 16:29 | 짧은소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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