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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1 09:00

[역사학/북리뷰] 만들어진 전통 - 에릭 홉스봄 外 문화연구



설날이 공식 휴일이 되기 이전에도 제주도에서는 대부분 음력설을 쇠었다. 사실 한국에서 제사를 양력으로 지내는 집안은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 집안만은 양력설에 차례를 지냈다. 별다른 이유는 잘 몰랐고, 그냥 우리 집안은 원래 양력설을 쇠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중에 나이가 좀 든 후에야, 할아버지께서 양력설은 일가친척과 함께, 음력설은 가문마을(집성촌)에서 지내시기위해 그렇게 규칙을 정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도 우리는 양력설을 지내고 양력에 제사를 지낸다. ... 왜일까?

사회경제학자인 Harold Innis는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면서, 돌과 진흙판등에 기록된 내용들을 ‘시간 편향 매체’라고 불렀다. 이들은 오랜 시간동안 잘 변하지 않고 그 형태와 내용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힌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한 사회의 관습과 전통을 유지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관습과 전통이란 실은 이런 것이다. 선조의 얼을 이음으로써 현재의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조상이 살아가면서 스스로 좋다고 생각한 것들을 이어받는 지혜의 계승. 그래서 우리에게 관습과 전통은 별다른 근거 없이도 항상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사실은? ‘만들어진 전통’의 저자들은 대부분의 전통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최근에 형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은 국민/국가통합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고 만들어졌다고. 아뿔싸. 이게 대체 뭔소리란 말인가.

이런 당혹감은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닌듯 하다. 당연히 역사가들의 혼란은 훨씬 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번역자는 역자 서문을 빌어 “‘사실 Facts’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역사가들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과거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가가 내세우는 모토는 과거가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이 아니라, ‘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과거를 개념화 하는가’에 집중되었으며, 과거의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왜 기억되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변한 것이다. 역사는 이제 일종의 ‘공적 기억’, ‘학문적 권위의 세례를 받은 과거의 재현’이라고까지 말해진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까지 한다. 

왜 전통은 발명되는가?


그렇다면 전통은 왜 발명되는가? 왜 사람들 사이에서 승인되며, 어떻게 전파되고 변형되어 고착되는가? 그런 전통은 현재 어떤 의미인가?

사실 서구 근대사회가 만들어진 것은 그리 길지 않다. 사상적으로는 16세기 중세 종교개혁부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18세기말 프랑스 혁명부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일어난 변화는 어떤가? 산업혁명과 상업혁명을 기반으로 하는 하부구조의 변화는 전면적인 변화를 강제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상과 교육과 문화와 관습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였다. 그 사이에 시체의 산이 되어 사라져간 사람들은 또 얼마인가. 그리고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구 남반구와 북반구등 전혀 말이 안통하는,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지역과 문명들이 만나고 뒤엉키게 되었다. 싫든 좋든 그 지역과 문명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새로운 규칙들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처럼, 그동안 자신을 규정해 주었던 ‘신’이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나’를 ‘나’라고 불러주는 것, 그리고 내가 속해있다고 느껴지는 공동체와, ‘너’와 ‘나’의 관계를 규정해주는 규칙들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정체성과 공동체와 규칙들이 만들어지는 처음에는, 당연히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됐으리라.  

이 책의 주된 관심사도 그 쪽에 집중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근대 민족을 주관적으로 구성하는 것 대부분이 그런 구성물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적합한 상징이나 혹은 알맞게 재단된 담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적 현상은 전통의 발명에 대한 진지한 관심 없이는 결코 제대로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만들어진 전통’들은 왜 발명되었을까?

책에서는 이들이 발명된 이유를 ① 공동체들의 사회통합이나 소속감을 구축하거나 상징화하기 위해서 ② 제도, 지위, 권위 관계를 구축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서 ③ 사회화나 신념, 가치체계, 행위 규범을 주입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한다. 이 가운데 버나드 콘이 책의 4장에서 로널드 인든을 인용하여 “문화적-상징적 구성 내부의 요소들은 단지 집적된 항목이나 사물의 더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요소들 간의 관계를 결정하고 그것의 가치를 구성하는 일정한 패턴에 따라 배치”된다고 말하며, 그것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가 식민지의 지배자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전통이었다고 한 것은 흥미롭다. 또한 전통의 발명 과정에서 엘리트들의 집단적 우월감을 고취하는 방법이 사용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의 식민지 시대에 한국 엘리트들이 어떻게 식민화 되어갔는 지를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전통과 팬텀의 시대

하지만 그냥 만들어지고 쥐어졌다고해서 그것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가? 비록 인간이 한 사회에서, 항상 저항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사회속의 인간은 그 자체로 능동적인 원인이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 바뀌지만 동시에 환경을 바꾸어 간다. 만들어진 전통을 역설적으로 이용한 간디의 운동은 그런 면에서 시사적이다.

사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수없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고 정착시키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있고 잊혀진 것도 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성공한 사례들이 연구되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필요에 의해 발명되었다가 그 순간에만 잠깐 반짝하고 잊혀진 ‘전통이고 싶었던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전통은 살아남고 어떤 전통은 그렇지 않았는가. 거기에는 분명히 ‘대중들의 동의’라는 규칙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보인다. 그리고 그 규칙은 분명히 ‘공동체의 목적의식에 의한 환상’에 적합한가 아닌가로 전통을 판가름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책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영국인들은 아프리카나 인도등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본래 그곳에 존재하던 것을 대치하는, 새로운 사회적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했지만, 근대화된 국가에서는 대부분 ‘미디어’의 힘을 빌려서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환상 가운데 자신들의 ‘우월감, 소속감, 정체성’을 나타나는 것들에 대해 대중들이 채택하고 열광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들에 대해서 의심하는 지식인들은 대부분, 그것에 열광하는 대중들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주목해야할 부분은, 전통을 발명하는 사람들과 대중들 사이에 위치한 ‘미디어’라는 존재다.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미디어 이론에서 ‘팬텀’을 말하면서, 그것을 ‘미디어를 통해 마치 진짜 사건이나 사물인양 자신의 앞에 등장하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실재한다고 생각되지만 그 실재여부는 알 수 없는, 어떤 유령 같은 것들이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며, 우리는 그런 팬텀들에 둘러싸인 매트릭스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데, 최근 만들어지는 전통은 이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팬텀으로서의 전통’이다.


가상 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연구

만들어지는 전통이 팬텀으로서의 전통이라면, 이는 만들어지는 전통이 가지고 있게 될 또 하나의 문제를 말해준다. 신나치스라 불리는 유럽의 ‘스킨헤드’족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대중들에게 ‘우월감, 소속감, 정체성’을 주는 전통들이 채택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사람들이 ‘열등감, 소외감, 정체성의 해체’를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의 해소를 위해 남과 자신을 ‘차별화’ 시키고 잘못하면 ‘배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만들어지는 전통은 무엇을 대체하고 있고, 무엇을 못보게 가리고 있는 가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왕실의 전통은 무엇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졌는가? 무엇을 대체했는가? 인도의 식민지 의례들은 무엇을 가리고 대체했는가? 스코틀랜드의 전통은? 근대 국가들이 만들어내는 상징들은? 그리고 우리가 근대시기에 계속 만들어져왔던, 일본에 의해 만들어져왔다고 생각되는 그 전통과 규칙들은 무엇을 가리고 무엇을 대체했는가. 이 책이 던져주는 깊숙한 물음은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최소한, 이 책을 읽은 후 내 마음에 자리잡은 결론은 그랬다.

앞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제 우리 집안은 모든 설날과 제사등 ‘전통적 행사’를 양력으로 지낸다. 그것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더 편했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날짜를 계산할 필요도 없고, 양력설날은 음력설날에 비해 훨씬 덜 붐빈다. 그리고 수십년간 그렇게 해 왔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것이 가리고 있는 것은 예전의 전통에 담겨있던 ‘규범적 의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체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 기복 사상’에 대한 ‘현대적 편리함’이다.


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외 지음, 박지향 외 옮김 / 휴머니스트
원제 The Invention of Tradition | 2004년 07월
나의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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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2/09/07 17:57 # 삭제

    나는 홉스봄을 싫어한다.

    홉스봄은 알려진 것과 달리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다. 이 사람 글을 보면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아주 하찮게 여기고(그는 식민주의자다) 페미니스트들을 아주 경멸하고 게이와 같은 성소수자들을 아주 혐오하고 흑인운동을 무시하는 철저히 유럽중심주의적 사고를 갖고 있는 백인 남성 마르크스주의자가 홉스봄이다.

    너무 그런 거는 모르고 우리 학계에서는 이른바 진보 또는 이른바 보수 학자 전부 다 홉스봄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러니까 말이다.

    어쨌든 홉스봄은 그런 사람이다. 책을 면밀히 읽으면 그런 것을 알 수 있고 파악이 되는데 왜들 그렇게 홉스봄이라면 늘 난리들을 부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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