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규님의 두 컷 만화를 패러디한 「조삼모사」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두 컷으로 된 단순한 구조, 극적인 반전에서 나오는 웃음, 말칸만 바꾸면 간단히 패러디되는 간편함이 인기의 비결입니다. 쉽게 말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패러디 만화입니다.

조삼모사의 웃음은 앞서말한 극적인 반전에서 나옵니다. 하나의 나쁜 제안을 하는 A(주인)와, 그 A에게 항의하는 다수의 B(원숭이들)가 첫번째 컷을 이루고, 시니컬한 표정으로 그게 싫으면 더 나쁜 조건(또는 얻게 되는 좋은 댓가)을 감당하라는 A의 말에, 언제 항의를 했냐는듯 태도를 돌변하는 B가 두번째 컷을 이룹니다.
이 패러디의 특징은, ① 대부분의 경우 A가 사장이나 교수등, 권력을 가진 쪽으로 묘사되고 ② B는 자기자신이나 친구들로 묘사되며, ③ 원래 원숭이들의 우끼끼-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자신의 사정에 맞는 "불평 문구"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 패러디도 있지만...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_-;;(단도직입)
또한 대부분의 패러디는 원본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조삼모사라는 고사에 대한 패러디)에 비해 구체적인 개인들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발생가능한 사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원숭이들의 끼끼 소리가 여러가지 문장으로 대체되는 것은, 패러디에 사실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이 패러디의 배경을 설명하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삼모사 패러디를 보다보면, 낄낄대며 웃다가도 가끔 서글픈 기분이 밀려들고는 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조삼모사 패러디가, 바로 우리 자신의 씁쓸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삼모사 패러디에서 A(주인)의 위치에 패러디 작가 자신이 대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위치는 대부분 힘없는 다수인 B(원숭이들)입니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힘없는 존재인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만약 B가 아래 그림처럼 제안 첫번째와 두번째를 모두 거부하는 강한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처럼 재밌게 느끼지 못할 겁니다.

또 하나, 조삼모사에서 보여지는 의사소통은 상식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요구가 통용되는 관계"입니다. 조삼모사 패러디는 대부분 이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사회적 권력 관계에 의해 "현실로 존재"하는 관계들을 폭로합니다. 클라이언트와 하청업체, 사장과 직원, 선생과 학생, 기업과 소비자등- 조삼모사 패러디에서 수평적인 관계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조삼모사 패러디가 유행처럼 웹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자신의 현실에 쉽게 대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그렇다고 힘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만 했다면, 결코 지금과 같은 붐-을 일으키지는 못했겠지요. 나 불쌍해-하고 패러디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조삼모사 패러디에 감춰진 진짜 힘은 바로 "현실을 드러냄"에 있습니다. 자신이 '약한 위치'에 처해있는 불합리한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비상식적 현실을 만드는 권력자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기회 아니면, 우리가 언제 그래볼까요. --;
덧글
간혹 원숭이를 일본에 비유하고 자기가 A에 이입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무료하게 축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덕분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공감합니다.
저는 저 원숭이의 '난 세상을 다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리 잘 봤습니다.
패러디 하나에 이런 재미가 있을줄이야...^^ {최고)
뉴로맨서/ 감사백만스물셋
디플/ 축구는 아쉬웠지요?
오오히트다/ 재미없다니까요...그렇게 패러디 하면..--;;
푸른별리/ 일요일. :)
나르사스/ 원숭이 얼굴, 최고죠-
푸른마음/ 자, 이제 다시 힘내세요!
사진기쨩-狂猫/ 좋은 코멘트에 감사드립니다-
냉장고/ 저도 찾아주셔서.. ^^
銀鳥-_-/ 그냥 제 생각이랍니다. :)
그라드/ 그래도 가끔은 그렇게 씩씩한 모습도..
kirhina/ 살다보면, 조삼모사같은 일들이 많으니까요..(털석-)
리타/ 어서오세요 :)
비공개/ 고맙습니다 :)
홍염의 눈동자/ 그렇죠. 앞으로도 한참 더 나올지도.
DIVE/ 그럼 이제 베스트를 뽑아볼까요? ^^
죠타로/ 원본 -_-b
근이/ (...카, 카연갤이 어디인가요? 디씨에 있는 곳인가요?)
위즈원/ 예. 분석이라기 보다는.. 그냥 생각이랍니다. :)
egovoice/ 세상이, 살기 힘든 곳이라서-
◆박군/ 납득에 감사를 :)
혼돈의씨앗/ 재밌는 패러디랍니다. :)
자연스러운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단 거 같아요.
구성의 단순함과 쉬운 패러디가 성공 요인일테구요.
좋은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
만화 패러디였군요
공감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
일시적인 혁명(또는 변화)은 가능하겠지만, 결국 또다른 소수가 지배계급이 될 뿐이죠.
에... 흠 장난하냐 버전이 장난아니게 웃기다고 느낀건 저뿐인가요 [..]
잘 보고 갑니다.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정말 우리 현실 같아서 마음이 씁쓸하네요..
이피/ 와, 깔끔한 정리를-
테리/ 패로디였답니다 :)
marlowe/ 그건 조금 더, 심사숙고해볼까요? :)
황치/ 어서오세요~
종이물고기/ 헉, 물고기님이 또 한분...
목성인_Pboy/ 재, 재밌을 수도 있습니다!
解明/ 그렇죠? :)
리닌/ 어서오세요-
로토/ 옙, 조심해 가세요~
Masamune/ 마사무네..면, 일본의 명검인가요?
미주랑/ :) ... (생각외의 히트가...)
망콘콘/ 아아... (...꽤 재밌었을 지도..모르겠네요..쿨럭-)
미자/ 그래도, 웃으면서 :)
거짓된미소/ 헉, 왜, 왜 찔리시나요...(쿨럭-)
글 참 맛나게 쓰시네요 ^-^ 링크 신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