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아귀에 핏줄이 모아졌다가
힘없이 풀리는 나날들 앞에
혜영이의 일기장은
다시 한번 나를 죄많은 선생으로
가슴에 낙인을 찍는다
시험 점수나 등수 때문에
자신이 바보라는 걸 깨닫게 된 건
정말 처음이라던 혜영이
아아 어두워지는 교실에서
마지막 책걸상을 정돈하는
주번 아이들마저 돌려보내고
쓰라린 가슴으로 창 밖을 보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피맺힌 유서 남겨 놓고 목숨 끊은
어린 열다섯 여학생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 나라 푸른 하늘 보기가
그만 소름 끼치도록 무서워진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후' 中 - 정영상
오랫만에 알고 있던 시를 다시 읽다가,
그만, 몸을 떨었다.
그 시대를 '학생'이란 이름으로 지나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깊숙히 각인되어 있을 문장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물론 지금 이 문장을 읽을 사람중, 어떤 이는
- 맞아, 성적순 아냐. 돈 많은 순서야.
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 시대를 함께 지나왔던 어떤 이도
- 아, 이미연이랑 김보성 나왔던 영화?
정도로만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
여전히 공부를 잘하면, 좋은 직장에 좋은 직업 얻어서
이쁜 마누라와 사회적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그리고 그것이 제일이라고 믿는 많은 이들이 있지만.
그때는 아마, 그렇게 산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서글퍼, 속으로 울었던 이들도 많았으리라.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친구들-
그 살아감이 힘들고 어려워서, 술을 마시고, 싸우고, 토하고
담배를 피우고, 타이밍을 먹고, 손목을 긋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던.
...내 친구들은 그렇게 자신을 세상에서 지웠고...
...이젠 대부분 기억하지 않는다...
정영상 시인은 이 시를 쓰고, 전교조 활동을 하고. 해직을 당하고,
폣병을 얻어, 결국,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죽은지 이제, 14년이 되어간다.
내 친구들과, 내가 아는 아이들은 이제,
그때보다 훨씬 더- 독해졌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란 말따윈, 꺼내지도 않는다.
의대를 가서- 사법 고시를 패스해서- MBA를 공부해서
CPA를 따서- 한의대가 최고니- 돈많은 남자(여자)와 결혼해서-
주식에서 대박이 터져서- 재테크를 잘해서-
폼나게 잘사는 꿈을 꾼다. ...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은, 뒤틀린 욕망으로 변하고
이룰수 없는 거짓을 행복이라 믿으며,
또는 그럴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살아간다.
여전히 삶은 답답하고, 서글프고, 힘겹다...
돈 한푼 없고 신용이 없단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해지고
무엇 하나를 하려고 해도 직업이 없다면, 많이 고달퍼진다.
욕망은 계속 늘어나지만 나는 배고프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붙잡고 놓지를 못하겠다. 그러진 못하겠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덧글
끼웅/ 미연씨라네..-_-;;
새벽숲/ ...갑자기, 신해철 옹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생각났어요..;ㅁ;
카프카의카/ ...:) 예, 일명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2라고 불렸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