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체 잘 웃고 잘 웁니다. 아버지도 그러시고 어머니도 그러시니, 타고난 성격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울면서 웃은 적은 몇 번 없는 것 같은데, 오늘은 오랫만에 울면서 웃었네요. 예, 6월 22일 새벽, 시민들이 빗 속에서 만들어낸 한바탕 축제 덕분에 울면서 웃었답니다. ... 뭐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눈은 반쯤 감긴 상태로, 몸은 축 늘어져놓고, 울면서 웃었다-라는 것이 더 맞겠지만.
솔직히 오늘 집회는, 정부의 추가 협상 결과가 발표된 다음이어서 속으로 마음을 많이 졸였습니다. 지난한 과정에 지친 시민들이, 추가 협상 결과에 대충 만족하고 넘어가면 어쩌나-하는 우려를 품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 품앗이로 나른 흙으로 흙자루를 만들고, 그 흙자루로 만든 시민토성을 발판삼아 버스위로 올라간 깃발들 ...개인적으로 안티2MB, 아고라, 진보신당 깃발이 함께 휘날리니 뭔가 감개무량. 계속 대치상태가 이어지고, 버스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시청에선 문화제가 열리고, 시청과 광화문 사이에선 풍물패 공연이 열렸습니다. 처음엔 애들 천에 태워서 띄워주는 놀이 하는데 남자가 부족하다고 해서 들어갔다가, 박 터트리기와 풍물 공연까지 한꺼번에 보게 되었네요. ... 그런데 이때 1차로 콧등이 시큰.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일본인 관광객-_-까지 함께 손잡고 돌아가면서 춤추며 노는데, 뭔가 따뜻함이 느껴져서(...물론 강강수월래와 기차놀이는 옛부터 전해오는 한국 전통 미덕 놀이입니다. (응?)).
그렇게 놀다가 다시 광화문으로 와보니, 여긴 소화기 뭉게구름이 펼쳐져 있더군요. 대체 여기가 천국인지 지옥인건지 -_-; 곳곳에선 전경차를 끌어내고, 다시 한 대를 끌어내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이상한 사람이 잡혔다는 얘기도 들리고.
그러다 새벽이 되었습니다. 사실 일찍 가려고 했는데, 살수 하겠다는 방송이 나오는 바람에 차마 다리가 안떨어져서, 계속 버텼네요. 새벽이 되니 비가 오다 말다 하더군요. 사실 새벽엔 좀 시끄러웠어요. 왠 이상한 아저씨(알고보니 금요일에 청소년들 때렸다던 아저씨)가 시위대 사이로 들어와서 이상한 소리도 하고. 날도 좀 춥고, 바람도 불고. 방송 차량 누나(?)는 경찰 목소리 여경과 한 판 붙는 분위기고.
... 그래도 방송차가 계속 버텨준 덕분에 분위기는 좋았습니다(이거 효과 크더군요.). 몸풀기로 아리랑 한 번 틀었는데, 여기서 사람들 갑자기 강강수월래 하기 시작. 이때부터 계속 노래 틀며 강강수월래와 기차놀이, 그리고 월드컵 액션을 반복하면서 놀았답니다. 그런데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랬는지, 새벽까지 버틴 사람들이 지치지도 않고 잔치를 벌이자 코끝이 시큰. 아놔 이 사람들 정말 지치지도 않는건지. 이땐 정말 어찌나 다들 이뻐보이던지.
그러다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더 놀자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다가, 그 장대비 속에서 뛰어대니며 깔깔대는 사람들을 보다가, 그만 조금 울었네요. 내가 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있었구나. 내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구나. 뭔가 따뜻하게 차오르는 행복한 기분. 지치고 피곤할 텐데도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들. 아, 내가 정말 예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구나-라는 깨달음.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끼리 싸움도 많이 하고, 이상한 사람도 만나고, 눈꼴 사나운 것들도 많이 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축제는, 제가 그동안 품고 있었던 의문들을 한번에 정리해 줬습니다. 왜 혼자서 쫄래쫄래 죽어라고 촛불집회를 쫓아다녔는지, 아는 이 아무도 없으면서 밤새 버텼는지, 글을 쓰고 또 썼었는 지. 그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 이번에도 변함없이 제 목소리가 중간중간에 들어갔습니다. 노래 엄청 못하기 때문에 분위기 다 망치고 있습니다. 거기에 안되는 화음까지. ...그저 마법의 기술로 제 목소리는 잊고 봐주세요..;ㅁ;
...맞아요. 나는, 우리-를 찾고 있었던 겁니다. 그것이 비록, 비오는 아침, 잠깐 동안만 느낄 수 있는 헛 꿈이라고 할 지라도. 서로를 배척하고 미워하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우리를. ... 물론, 꼭 밤새 커피 얻어 마시고 우비 얻어 입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랍니다(응?).
* 그동안 잘 피해다니다가, 결국 이 날 싸움 말리다가 얻어맞는 바람에 -_-;; 얻게된 상처. 것봐요, 결코 좋은 꼴만 본 것은 아니라까요.. :)
* 커피와 우비를 지원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니면 이미 얼어죽었을 지도 몰라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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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자그니 | 2008/06/22 11:56 | 동영상 | 트랙백(3)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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