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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8 01:18

아이야, 편히 쉬렴 오후의 잔디밭

1. 촛불 집회에 나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게 된다. 지난 6월 30일, 첫번째 시국 미사가 있던 날도 그랬다. 행진이 끝난 후, 흥분해서 혼자 전경들에게 달려드는 아저씨를 한참 말리고 있었다. 겨우 말리고 나서 시청 광장 턱에 걸터앉아 있는데, 한 아저씨가 생수 한 통을 가져다 주시며 말을 건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어떤 이야기는 고개 끄덕이다 어떤 이야기는 한 귀로 흘리고 있는데, 아저씨가 그런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세상 만들어 주려고 한게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아니, 아저씨가 왜 미안해요. 정치에 제대로 관심 없었던 것도 우리고, 투표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도 우린데, 아저씨가 왜 미안해요. 그렇지만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에이- 아저씨 탓 아니에요-만 하고 있는데, 괜히 콧등이 시큰하다. 얼마전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같이 걸어갔던, 기타 들고 있던 노란 머리 청년이 기억났다. 그때 그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계속 미안해하고 미안해한다.


2. 한 아이가 죽었다. 여고 3학년. 여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아이. 사랑해줬던 친구들이 많았던 아이. 그 아이가 죽었다. 지난 7월 5일, 촛불 집회를 다녀온 날 밤, 집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말수가 없고 조용한 타입이었다고 하는데, 어른들이 하는 말이니 정말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그 아이의 죽음을 전해 듣고, 그 아이의 미니 홈피에 찾아갔다. 미니 홈피의 이름은 '님들아 바뱌'. 1촌이었던 친구들이 벌써 많은 글을 써놨다. 사랑해 주는 친구들이 많았구나- 싶다. 참, 친구들에게, 무거운 사랑 하나 남겨놓고 떠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니, 이렇게 슬퍼하는 친구들 두고 가버리면, 너 어쩌니.

그 친구들의 글을 읽다가, 못난 어른이 되버린 나도, 피씨방 귀퉁이에 앉아 질질 울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다른 세상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세상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서울 어딘가에서 서로 스쳐 지나갔을 지도 모를 아이에게, 맘 속으로 계속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다.


3. 얼마나 더 많이 방황하고 학교를 떠나야 세상이 변할까. 그 아이들 가슴에 못을 박으며, 잘난 엘리트들 몇몇 더 키우면 그게 좋은 세상일까. 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라고 썼던 것이 지난 3월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도 여전히, 아이들은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세상은 아이들을 일렬로 줄 세우고, 누가 그 줄 앞에 서느냐가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협박한다. 당연히 사랑도 하고 고민도 하고 몽상도 하고 울고 웃고 떠드는 게 하나 이상하지 않은 아이들을, 자신들이 정한 기준으로 잣대 긋고 처벌하며 순위를 매긴다.

10여년전의 내 친구들도 그렇게 떠나갔다.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친구들이, 그 살아감이 힘들고 어려워서, 술을 마시고, 싸우고, 토하고, 담배를 피우고, 타이밍을 먹고, 손목을 긋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죽어가는 아이들은 더 늘어만 간다.

이명박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허울 좋은 우리들의 핑계다. 지난 20년간, 사람의 긍지보다 돈을 앞세웠던, 그리고 그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동의했던 우리 모두가 실수한 거다. 나만 혼자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되고, 남들이 다 짤려도 나만 안짤리면 되고, 그저 내 이익만 이야기했던 수많은 우리가.

4. 잘 가라, 아이야. 미안하다, 미안하다고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어서, 정말 미안하다. 세상 모든 죽음에 슬퍼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너의 홈피에 들어간 순간, 나는 이미 너를 모르는 남이 아니라서, 그냥 막연히 슬퍼지네. 미안하다, 솔직히 우리는 네가 왜 죽었는 지도 잘 몰라. 네 아픔을, 힘듬을, 결국 고민하고 고민하다 흐트러졌을 시간들을.

너의 글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많이 허탈해하고 있었구나, 화가 나 있었구나-하는 것밖에는 알 수가 없어. 너의 이야기가 이제는 들리지가 않아. 읽히는 건 텅빈 눈물 뿐이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미안해.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었구나.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구나. 그렇지만, 뭔가는 할거다. 응,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는 할거다.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알고 있는 걸.

어찌되었건, 뭔가는 할거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뭔가는, 꼭, 할거다.
... 그러니까, 너는... 편히 쉬어. 그 세상에서, 꼭, 편히 쉬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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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서 투신자살 하는 것도 봤다. 그 아이도 여중생이었다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하나씩 갖고 있다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죽은 아이도 갖고 있었는지, 거기에는 일촌들이 글을 달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무슨 대단한 조치를 취하거나 SK커뮤니케이션즈가 어떤 기획이 있지 않는 한은 저 디지털 코드의 조합들도 이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용 ... more

덧글

  • twinpix 2008/07/08 03:04 # 답글

    안타깝군요……. 아직 어린 학생인데. 주위에 누군가 있었다면. 나래가 편히 쉬기를. 명복을 빕니다.
  • 자그니 2008/07/08 14:55 #

    편히 쉴 수 있기를...
  • 실비단안개 2008/07/08 07:23 # 삭제 답글

    나래양의 명복을 빕니다.()
  • 쥰_ 2008/07/08 07:49 # 답글

    참 예쁜 아이인데, 안타까워요. 부디 하늘에서는 편히 쉬길.
  • winbee 2008/07/08 09:05 # 답글


    수레바퀴 밑..
    으로 들어가라는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어른들 보면..
  • draco21 2008/07/08 11:25 # 답글

    ...그렇지요. 우리의 잘못입니다. 좋은 세상에 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 ALICE 2008/07/08 14:56 # 답글

    아..정말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그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21세기에 일어난다니...비극이군요..
  • 이선희 2008/07/08 17:47 # 삭제 답글

    나래랑친한친구인데요
    나래의얼굴이다나온개인적인사진은
    올리지않는것이맞다고보거든요.
    지워주셨으면감사하겠구요.
    나래도하늘에서
    이렇게걱정해주고있는사람들이있다는것에
    감사하게생각할거예요.
    사진은좀지워주세요.
  • 자그니 2008/07/08 19:10 #

    삭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광대 2008/07/08 17:52 # 답글

    정작 사죄해야할 몇몇사람들 아무런 꺼리낌없이 살고 오히려 관계없는사람들이 미안하고 하다니 크크크
  • 임하니 2008/07/08 18:25 # 삭제 답글

    당신이 뭔데 우리나래사진 가지고 이래라저래라야 당신이 나래알아?
    당신다위가 뭔데 허락도 안받고 가져가?죽고싶어??
    우리가 당신들한테 나래죽음에 관한거 알려달랬어?
    당장지워 전화번호뭐야 당장불러 진자 어이가없네
    우리도 차마 걔얼굴사진 잘안올릴려고 난린데
    뭔데 당신이 멋대로 나래를 걸고 넘어져? 뭔데 당신이 당신이뭔데
    제발 지워줘 제발...진자 이러는거 정말..싫어..진짜싫어
  • 자그니 2008/07/08 19:11 #

    죄송합니다. 삭제했습니다.
  • 임하니 2008/07/08 19:16 # 삭제 답글

    미니홈피 사진도 지워주세요....그거보고 사람들이 저희 홈피찾아오고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좋은 의도였던거 아는데 ....일단 말 험하게한거 죄송하구요
    이름을 신모양으로 고쳐주시고 홈피사진역시도 지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자그니 2008/07/08 19:19 #

    예, 원하시는대로 수정했습니다. 제 짧은 생각이, 혹시라도 친구들에게 슬픔이 되었다면, 정말 미안합니다-
  • 2008/07/09 00: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자그니 2008/07/09 00:43 #

    괜찮습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선, 항상 제가 책임을 져야지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 에이니드 2008/07/09 01:36 # 답글

    태그도 수정하시는게 ^^;
  • 자그니 2008/07/09 22:36 #

    수정했습니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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