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들이 시민인줄 알았다




지난 토요일-일요일로 이어지던 행진에서, 새벽 4시가 조금 못된 시간에, 서대문 로타리-새문안 교회로 이어지는 길에서 경찰의 강제진압이 있었다. 이 날 진압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경희궁 앞 공원에 있던 시민들이 십여명 연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갑작스럽게 밀고 들어오는 전경들에게 여러사람이 밀리고 넘어져 다쳤다.


▲ 이날 행진은 솔직히 경찰이 아니라 장대비와의 싸움이었다. -_-;
사람들은 경찰과 의미없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 청와대를 둘러싼 모든 길이 막히고, 서대문에서 올라가는 길엔
전경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 동영상에서 전경들이 시민들을 한번 밀고내려간 후, 대오를 정비하는 전경들의 뒷편으로 흰색 비옷을 입은 수십명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고립되었다가 빠지고 있는 시민들인줄 알았다. 항의도 안하고 아무 것도 안하면서 그냥 서 있는 것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나이도 좀 있어 보이는 분들이라, 어디 386 분들인가-라고 생각했다.

동영상을 찍다가 행진 대열과는 완전히 멀어지고 말았다. 다시 비도 엄청나게 쏟아졌다. 비나 피하자고, 정동 맥도날드 건너편 꽃집 앞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있는데, 뒷편의 전경들 한무리가 빠지는가 싶더니, 이 사람들이 모두 내가 있는 꽃집 쪽으로 이동해서 휴식을 취했다. -_-;

그들은 사복경찰이었다.

얼굴들을 보니 30대 후반에서 40대 정도. 운동화를 신고, 햇볕에 많이 그을리긴 했지만 나름 점잖은 얼굴들이었다. 이때도 여전히 나는 이들이 시민인줄 알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더라. 무전기를 든 사람들 둘이 오더니 사람들을 두 패로 불러 모은다. 뭐하나 했더니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직력이 무척 좋은 사람들이네-라고 생각하다가, 아까 의료지원팀의 한 명이 "제네들 사복 경찰일지도 몰라요"라고 한게 떠올랐다.

이때 속으로 허걱-_-했다. 이들은 사복 형사들이었다. 나이를 보니 순경보다도 많겠더라. 한 젊은 학생이 온몸에 비를 맞으면서 오더니 "나쁜 놈들, 표적을 찍어놓고 체포하러 오냐!"라며 울부집으며 항의했다. 나중에 아침에 만난 다른 분들께 얘기 들어보니, 이 사람들이 앞에 있던 사람들을 강제연행했다고 한다. 다들 "우리편"인줄 알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체포를 하려고드니 놀라고 당황했다고.

혹시나 뭔 일이라도 날까 싶어, 학생을 달래며 돌려보냈다. 보내고 한사람씩 얼굴 봐두고, 다친 사람들 있는 쪽으로 내려오니, 광화문쪽으로 열을 지어 이동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한 사람은 경찰들이 오는 거보고 놀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셔터내리려다 방패로 찍혔다고 한다. 그 사람은 거리에 쓰러져 응급조치를 받고 있었다.

시민 기자 두 사람이 충정로쪽으로 간다고 택시를 타고 떠났다. 다른 몇분들이 오더니 청계천쪽에 사람들이 있다고 가보자고 한다. 가는데 몇몇 사람들이 사복 경찰들 봤다고, 다시 한번 알려준다. 비가 쏟아져도 너무 쏟아져서,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청계천에 도착하니 몇몇 사람들과 예비군을 빼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충정로(여의도?)-서울역-광화문 촛불다방, 그리고 청계천에 있는 우리들 일부.


모이신 분들과 인사하고, 그분들이 사주신 라면 한그릇 얻어먹었다. 다들 촛불집회에서 만나 서로 친구가 되신 분들, 나이가 좀 많으신 분들이었다. --; 그분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물먹어 난리를 치는 휴대폰을 달래며,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다. 힘들고, 지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조금은 절망한 하루.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아저씨 한 분이 그러신다.

"저 형은 촛불들이 다 꺼지고 나서 하나만 남으면, 그 촛불을 바로 자기가 들고 있을 거래요. 근데 나도 그럴 거거든? 그리고 다들 그런 마음으로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이 촛불이 어떻게 꺼질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아까, 며칠전 화장실 다녀온다고 내 전화번호를 따갔던 아저씨에게 아까 전화가 왔었던게 생각났다. 새벽 두시 넘을 때쯤, 갑자기 그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었다. 왠일인가-싶어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오늘도 대열에 계세요?"
"아, 예- 어쩌다 보니-"
"아휴- 매일같이 그렇게 밤새서 몸이 어떻게 버틴데요. 좀 쉬엄쉬엄해야지"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
"그래요- 수고하시고요- 나중에 다시 보게되면 커피라도 한잔 합시다"


그 생각을 하는데 아저씨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인터넷 방송보다가, 지금 서울역으로 나오셨다고 한다. ... 그때 시간이 새벽 다섯시반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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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 2008/07/21 01:46 | 이의제기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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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南無 at 2008/07/21 02:24
저는 현장에서 못 봤는데 영상을 보니...

제가 처음 가두 집회가 있던 종로에서 보았던 그 정도 급의 나이더군요.
이들은 직원 중대 (70, 71, 72, 73, 74) 중대가 아닙니다.
연령으로 볼 때 직원 중대 소속이 아니고 처음 보았던 것처럼 체포 전담반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주의할 필요ㅏ 있겠군요.
Commented by ALICE at 2008/07/21 02:28
세상에......말로만 듣던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군요...-ㅅ-;;
아무 일 없으셨으니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부산사나이팬 at 2008/07/21 10:06
마지막 하나 남은 촛불 들고있을꺼란 이야기.... 갑자기 눈물이 나네요...

갑자기 80년대로 돌아가버린... 이 현실에 대해....
Commented by 중간자 at 2008/07/21 10:08
몸만은 무사하십쇼.

...눈을 닫고 귀를 막으려고 해도 안되겠군요.
하하.
Commented by crystalsky at 2008/07/21 10:26
-_-;;;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MB 지지자들은 (겉으로 말은 안하지만) 파쇼를 지지하는 것 같아요. 나빠진 경제상황 등등등을 위대한 영도자께서 단번에 해결해 주리라 믿는 거죠. 막연한 느낌입니다만... 그 나이대, (박정희를 경험한세대) 에서 느껴지는 강한 지지가 그런 감을 줍니다.
Commented by 부비트랩 at 2008/07/21 10:55
독도에 소고기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정말이지 하루죈종일 채이고 사는군요. 힘내세요 ...
Commented by draco21 at 2008/07/21 14:04
... 고생 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시민과 전경이 고생해야 하는지... 착잡할 뿐 입니다. 그리고 뒤에서 이런 말씀드리긴 뭐합니다만... 몸조심하세요.
Commented by - at 2008/07/21 17:54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핀투리키오 at 2008/07/21 18:07
한국의 공권력에겐 여전히 집회참가자 = 소수의 좌빨불순분자들로 보이나 봅니다. 이번 촛불집회 내내 느꼈지요. 저들에겐 집회의 다양한 성격이나 참가자들의 배경이 아무 의미도 없구나...그저 모두 악의로 법을 파괴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는구나..라고.

그야말로 독재정권 시절 이래 내려온 전통 아니겠습니까. 사실 MB가 독재정권이란 말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일종의 비판적 수사법이란 것도 알지만) 공권력의 성격은 독재정권과 바뀐 것이 없습니다. 참, 수고하셨습니다. = =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8/07/22 06:47
범법자를 체포하는 데 꼭 제복을 입고 체포해야 하나요? 표적을 정해 놓고 당연히 체포해야죠? 주동자를 잡아 넣어야 범죄가 재발되는 확률이 낮아 지지 않습니까? 폭력조직 검거할 때도 어떻게든 주동자끕을 체포하려 애쓰는 게 당연한 상식 아닙니까?

폭력조직이든 방화위협 훌리건들이든 범죄를 저지르는 특히 현행범을 체포하는 정당한 공무집행중인 분들이십니다. 범법자들은 법을 어긴 만큼의 처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수 라는 좋은 방법도 있느 것 같던데?
Commented by -A2- at 2008/07/22 09:41
그 범법자라는게 2mb, 이건희 말씀하시는거죠?
Commented by SH at 2008/07/22 17:36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을 누차 강조하시는 분들이 '집시법'을 인용해 강경진압은 당연하다고 주장하시죠. '지나가다'님도 집시법을 찬찬히 읽어보세요.
Commented by gma at 2008/07/27 07:38
시위를 하더라도 폭력을 행사하거나 법을 어긴 사람은 당연히 체포하는것이 정상적인 국가입니다.
범법행위를 하는 시위자를 체포하는 경찰을 적으로 보고 강경진압이라고 하는건 좀 어거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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