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이과, 그리고 연애에 대하여


1.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을 만나왔습니다.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아프게 헤어진 사람도 있었고, 이상하게 얼굴조차 까먹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당연히 연애이면서 연애가 아닌 것 같은 만남도 있었구요. 사실 연애의 기준이란 것이 애매모호해서, 이 정도 하면 연애- 이 정도 이하면 연애 아님-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런 만남을 많이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워낙 사람을 만나 같이 노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탓입니다.

그러다보니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철학-사학-법학-영문학-사회학-연극영화-관현악-산업디자인-경영학-국문학-서반어-약학-재료공학-생물학-화학...대충 떠오르는 사람들의 전공 분야만 해도 버라이어티-_-하군요. (갑자기 그동안 대체 뭐하고 산건지하는 생각이...) ...그런데, 이상하죠.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도 '전공'으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내게 하나의 '사람'이었지, '관계자'가 아니었던 탓입니다. ... 뭐,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구요.

▲ photo by Face it.


2.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사람을 만나고 친해진다는 것, 그렇게 그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제게는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의 문이 열리고, 내 안의 세계가 그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비가역적으로 지워질 수 없는, 그런 하나의 존재가 되어갑니다. 그건 시간이 지나도 지울 수 없는, 내 안에 새겨진 불에 데인 상처 같은 것.

그 세계는 결코 전공 같은 것이 아니었어요. 당신과 내가 같은 '수학의 정석'을 배웠다고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경영학 개론' 책과 '공업 수학'책과 '천개의 고원'을 들고다니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로 묶이지는 않아요. 똑같은 책을 읽어도 해석은 백만개가 나오고, 똑같은 방법론을 배워도 그것을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두 다르답니다. 

물론 싫어도 배우고 익혀야만 할 것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걸 어떤 이는 기본 지식이라고 하고, 저는 그 세계의 말이라고 합니다. 법학의 세계에는 법학의 언어가, 의학의 세계에는 의학의 언어가, 전자공학의 세계에는 전자공학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 그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세계는 그것만으로 구성될 수는 없는 걸요.

...어쩌면 이과와 문과를 구별해서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나누는 것과 하나 다르지 않을 지도 몰라요. (...아, 물론 저는 운명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_-; 주역이나 사주, 별자리 무척 좋아해요.)




3. 전공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이 내게 보여준 것은 그 사람만의 세계였습니다. 나는 그 세계와 인연을 맺어가며 자라왔습니다. 나는 사람과 인연을 맺으면 그 사람의 세계로 뛰어들어갑니다. 체육학과였던 친구에게는 골격과 근육의 아름다움을, 스페인어를 전공한 친구에겐 음악의 감동을, 생물학을 전공한 친구에겐 대학원생의 고단함을-_-;; ...그리고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던 친구에겐, 영화가 하나의 세계일 수도 있음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제 지식도 매우 잡다-_-해지긴 했지만 말입니다.

에, 그러니까, 혹시 이 글을 보는 이공계생이 계시면, 미리미리 연애를 포기하지 마시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_-; 문과생이라고 날때부터 연애를 잘하거나 그러는 것은 아니니, 스스로를 자학-_-하지 마시고 뛰어드세요. 자고로 제가 봤을땐, 연애 잘하는 녀석들은 겁도 없고 능청도 잘 떠는 그런 사람이었지, 전공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답니다. 

가진 것 없다고, 나에겐 연애따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 것 생각하며 연애하는 사람들이랑, 안 사귀면 그만인걸요.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고학생(?)인 자그니도, 지금까지 잘만 연애해 왔습니다. 말 못하고 옷 잘 못입고- 그런 것은, 연애하면 점점 고쳐져요. 자고로 연애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익히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구요.

아셨죠? 미리 재단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는 겁니다. 나는 이과라서- 나는 문과라서- 이거 별로 중요하지 않다구요.

...그런데 이거 어째, 진지하게 시작했다 개그로 끝나는 포스팅....

■ 관련글

* Piano님의 「인문계와 자연계 사이의 차이 - 가끔 보게되는 오해」글을 읽다가 적어 봅니다.
* 근데 진짜 연애 밸리 없으니까, 이런 글 어디에 보내게 될 지 갈등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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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 2008/07/29 00:59 | 오후의 잔디밭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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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2- at 2008/07/29 01:30
이과 남자와 문과 여자가 만나면 찰떡궁합이라던데요 ㅋ
Commented by 마키아또 at 2008/07/29 01:30
저는 정치외교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을 만나면 정치적인 눈치 교환과 설득을 잘 합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여자도 잘 만나는 건 다른 문제더라구요. 히히

이러한 제 경험 덕분에 이 글에 추천을 살포시 밟고 지나갑니다

글의 주제가 상당히 제 블로그와 비슷하군요. 반가워요.
Commented by 마키아또 at 2008/07/29 01:35
방명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여기다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른쪽 사이드바에 추천합니다! 라고 있잖아요. 알라딘에서 하는 CPC광고가 이것 맞나요? Thanks to Blogger 시즌 2 이게 저 '추천합니다!'와 같은 서비스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저는 티스토리를 쓰고 있습니다. 알려주세요. 저도 나름 모던락 전문 블로그 만들려 해서 음반 광고를 달려고 해요.
Commented by erte at 2008/07/29 01:43
철학-사학-법학-영문학-사회학-연극영화-관현악-산업디자인-경영학-국문학-서반어-약학-재료공학-생물학-화학...대충 떠오르는 사람들의 전공 분야만 해도 버라이어티-_-

정말 많은 분을 만나보셨군요.. 쪼끔 부럽;;;
왠지 솔로분들에겐 엄청 염장성의 문장이 될지도;;; ㅋㄷㅋㄷ
Commented by 쿨짹 at 2008/07/29 02:17
전... 공돌이-공돌이가 되고 싶었던 자연계(하지만 마음은 공돌이).... 생략생략... MBA하고 로스쿨나온 분, 야구선수, 소속불명, 공돌이, 공돌이... ㅡㅡ;; 공돌이가 대부분이군요... 쩝...
Commented by 1월의가면 at 2008/07/29 04:32
문과, 이과 + 예체능~

뭐 전공이 중요한건 아니니깐요
학교에 있어서 구분되서 생활할때만 그렇지요~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07/29 07:11
연애를 안해봐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능(...)
Commented by Piano at 2008/07/29 08:49
저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으면 좋았을텐데..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 다 공돌이-_-였거든요. 물론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그 '개인'의 세계와 만나는, 어찌보면 전공이랑은 관련 없는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여튼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어요!
(어째.. 결론이 이상..;;;; )

여튼 트랙백 고맙습니다 ^^*
Commented by 엔즐군 at 2008/07/29 09:50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문/이과 가르기죠.
사실 문과와 이과는 경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특수한 교육 환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문과 사람과 이과 사람이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유완킴 at 2008/07/29 11:08
전 문과 출신 공학도 믹싱 입니다. ^^
Commented by zoon at 2008/07/29 11:31
연애 많이 해보셨다는 자랑 포스팅인가요? ㅎㅎ
Commented by Polycle at 2008/07/29 11:38
나는 뭘까요?
Commented by 이안。. at 2008/07/29 12:11
'생물학을 전공한 친구에겐 대학원생의 고단함을-_-;;' 부분에서 웃음이 나고 말았습니다만, 제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군요.
Commented by phice at 2008/07/29 12:20
사람 나름입니다. 전공에 집착했기때문에 전공때문에 잘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겁니다. 자격지심이죠. 학벌에 징크스 있는 사람일수록 학벌운운하는 것과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때 공적인 한 면이 그 사람 자체보다 크게 보인다는건 잘못입니다.

말해놓고 보니 잡설이군요. (총총)
Commented by Lani at 2008/07/29 15:23
뭐.. 관심을 어느쪽에 갖느냐... 가 중요한거겠죠.
제 주변의 여자들은 대부분 공대쪽 분들입니다만... 절대로 공대 출신 남자들하고는 안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빌리 밥 at 2008/07/29 19:03
보통은 문/이과 가르기 라기 보다는, 상대방의 차이를 보고 그 점을 인정하는 정도이지 않을까요? 분명 개개인이지만, 한국인의 특성과 일본인의 특성, 중국인의 특성과 같이 그룹간의 특징을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분명 그 특징에만 사로잡혀 사람을 재단하는 것은 문제이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ㅋ

하지만 주인장님 말씀대로 지레 겁먹고 '나는~니까' '걔는 뭐~니까' 하면서 미리 겁내는 것은 문제겠죠 ^^
Commented by june at 2008/07/30 00:08
전 이공계생 좋던데! 무조건 내가 모르는걸 잘 알고 있으면 호감도가 급 상승한달까요 ㅎㅎㅎ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07/30 00:27
-A2-/ 전 문과 남자...ㅜㅡ

마키아또/ 아, 그냥 이글루스 라이프로그입니다. 알라딘 TTB가 아니랍니다. :)

erte/ 오래가진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지요..

쿨짹/ 응? 쿨짹님 공-아니셨어요? (랄랄라)

1월의가면/ 그렇죠. 사회에 나오면 결국...

은혈의륜/ 아니, 아직까지!

Piano/ 금방 만나실거에요 :)

엔즐군/ 철학과에선 경계가 없다고 배웁니다..(응?)

유완킴/ 전 철학과 출신인데 예전에 서버도 관리하고 프로그램도짜고..(울며 뛰쳐나간다.(

zoon/ 길지 않았다는 슬픈 고백이라니까요..

Polycle/ 연애상담이라면 언제라도-

이안。/ 웃을수가 울수가 없는 일인게지요..

phice/ 예, 사람나름입니다..:)

Lani/ 그런다고 문과도 별다르지 않을텐데요.. :)

빌리 밥/ 음, 상대방을 더 잘이해하는 도구, 그럴수도 있겠네요-

june/ 그렇다면 대한민국 남자 절반에게는 호감이 있으신겁니다!
Commented by 하레 at 2008/07/30 05:19
여태까지 16명 이상의 여자를 사귀었다구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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