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내가 죽은 다음에는-


며칠전 호주 시드니에서, 동거중이던 한국인 남자 유학생(19) 한 명과 중국인 여자 유학생(20) 한 명이 아파트 3층 발코니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남자는 두 다리와 골반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여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이들은 자의가 아닌, 주택에 침입한 괴한의 협박에 의해 뛰어내린 것으로 밝혀졌는데, 범인은 어제 체포되었습니다.



이 사건 발생이후, 호주 언론들이 취재한 몇가지 기사가 특이합니다. 바로, 피해자 두 사람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내용을 취재해 기사를 썼더군요. 한국으로 따지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취재해서 기사를 쓴 것과 마찬가지인데... 한국에선 유명인들의 미니홈피에 올라온 글이나, 방명록에 올라온 글이 일부 인용된 적은 있어도, 이렇게 개인 블로그를 아예 취재 대상으로 삼은 적이.. 있었나요?

사실 이 사건은 여러가지 면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긴 합니다. 젊고 잘생긴 두 동양인 남녀가, 칼을 들고 침입한 변태적 성취향을 가진 괴한에게, 벌거벗은 채로, 각자 수 차례의 성추행을 당하고, 강제로 아파트 3층 발코니에서 떨어져 한 명은 중상, 다른 한명은 사망했습니다. ... 성적이고, 폭력적이고, 끔찍합니다.





어쩌면 기자들이 두 사람의 블로그를 뒤지게 된 이유도, 그런 호기심 어린 사례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기사는 대부분, 페이스북에 드러난 두 사람의 사적인 관계, 그러니까... 러브 스토리에 집중합니다. 두 사람이 어떤 말을 주고 받았는지, 그들의 닉네임은 무엇이며, 서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들이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었는지. ...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있는지.

예를 들어 중국인 여성의 닉네임은 ELva 였고, 한국인 남성에게 BF란 1촌명(?)을 붙여줬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함께 여행한 곳의 사진을 올렸고, 그 사진에 "luv"라거나 "Elva is happy with my bf"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baby baby baby … kkkk,"라거나 "kkk … my honey … luv u … kkk."라면서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블로그, 또는 미니 홈피를 취재하는 것은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도 블로그는 남습니다. 친구들은 내 블로그를 찾아와서 내게 "슬프다"는 말을 건넵니다. 내가 사라져도 남은 들여다본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예전에 썼던 글처럼, 그런 블로그 취재를 부정적으로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블로그는 내 자신, 또는 내 자신을 대표하는 장소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곳으로 나를 만나러 옵니다. 내 이야기를 읽으려고 오고, 우연히 검색엔진에 낚여서도 옵니다. 댓글을 다는 것은 말을 건네는 것이고,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 그리고 내가 죽은 다음에도, 누군가는 이 블로그를 찾아오겠지요. 처음에는 슬퍼하는 사람들의 글이 많겠지만, 나중엔 검색엔진에 걸려서 오는 사람이 더 많아질겝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가 죽은 지도 모르고 "좋은 글이네요~ 퍼갈게요~"하고 댓글을 남길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제 닉네임을 도용해서 "ㅋㅋㅋ 님 오랫만이셈"하고 답글을 달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블로그는, 인터넷에 미리 써놓은 내 부음기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란 사람,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다가 떠난다-는, 나에 대한 기록이란 의미에서 말입니다. ... 왠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가식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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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 2008/10/31 13:47 | 블로그 연구 | 트랙백(1) | 핑백(1) | 덧글(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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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유서 플러그인
리퍼러에 lunamoth.biz 로 시작하는 URL 이 무수히 찍혀있는 것을 보고 다시 refer 를 설치해서 수사를 해보기로 했다. 관련 아이피를 추적해보니 수단에, 이라크에, 한국에 도대체 종적을 잡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스팸 봇 중 하나랴 싶어 무심히 지나치려던 찰나 query 섹션에 또 자살이란 글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때마침 뉴스에선 "검찰 소환을 앞두고 투신 자살" 이란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파괴할 권리를 찾아 구글을 ......more

Linked at 추유호's encycloped.. at 2009/03/21 11:05

... 명에 대해 여러 블로거들의 생각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죽은 후 웹서비스 개인정보 관리는? by odlinuf 내가 죽은 다음에 내 블로그는 ? by 구루 블로그, 내가 죽은 다음에는- by 자그니 내가 죽은 다음에 나의 흔적들 by yong27 물론 개개인이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 더 죽음에 다가가는 것 ... more

Commented by peter153 at 2008/10/31 13:50
죽은 다음에 누군가가 그 블로그에서 고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6
그래줬으면 좋겠어요. 누구라도, 누구라도-
Commented by 시오、 at 2008/10/31 13:52
.....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본문의 얘기가 머리에 안 들어올 정도네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7
끔찍한 사건이죠. 19살 20살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Commented by 담은 at 2008/10/31 14:02
죽은 다음이 아니어도.. 몇년전부터 쌓이고 있는 나의 포스팅들을 볼때 내가 이리 살아왔구나하며 참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던데요.
내가 죽은뒤의 나의 블로그...는 아직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7
전 예전 글 가끔 읽으면 헷갈려요. 이게 정말 내가 쓴 글이 맞는 건가...싶기도 하고.
Commented by 혜란 at 2008/10/31 14:34
참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봤었어요.
끔찍한 사건뒤에 호기심이 블로그를 탐색 하게끔 만들었다- 라는 기사는 되게 눈살 찌푸려 진다만, 우울증을 앓는 우리 주변 가까운 사람들은 블로그를 '유언장'처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7
아, 맞아요... 본 적 있어요...;;; ... 무서웠어요.
Commented by 후유소요 at 2008/10/31 14:44
저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죽으면 내 블로그는 어떻게 되나. 유언장에 블로그 비번과 주소를 적은 다음 삭제해 달라든가 하는 말을 추가하든지 해야겠어요 ㅎㅎ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8
다른 이들이 스크랩해놓을 거에요 :)
Commented by 실비단안개 at 2008/10/31 14:47
많은 날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을 하면서 쉽게 하지 않습니다.
고발 포스팅은 정말 자제하구요, 제목도 며칠 후, 한 달 후, 일 이년 후, 다시 보아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자 답니다.
그래야 하지 않나요?
죽고나면 아이들이 아마 관리를 할 겁니다.
가족의 공용 비번 부분을 사용하거든요.

지나치게 이웃을 의식하지 않고 나에게 충실하자 - 그것이 곧 이웃에 충실한 일이다 - 뭐 이렇게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8
실비단안개님은 충분히 잘쓰시잖아요.. :) 저는 게으른데다 싸움쟁이라서...
Commented by eco at 2008/10/31 14:50
내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전통 된장 담그는 것을 알려거 함께 메주를 쑤어 매달아 놓고는 그 겨울에 어머님이 별세하셨는데, 집에 들를 때마다 메주가 덩그러니 매달려 있더라. 내 집에 와서도 엄마가 마들어 준 고추장을 일 년을 더 넘게 먹었지. 고추장 뚜껑을 열 때마다 '사람은 가고 물건은 남는구나' 그 생각에 '나는 아무 흔적도 안 남겨야지~' 했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지만, 살고 있으니까 내 몸 곁에 뭔가를 자꾸 끌어 들이는구나. 죽음이 오는 것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죽음이 저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 오면 얼른 나와 관련한 모든 것을 싸악 치우고,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앉아서 기다리게^^*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8
누야, 30년은 더 살아야죠 -_-;
Commented by 사이동생 at 2008/10/31 14:54
잘 읽었습니다. 이런건 술이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하는 문제같다는 생각이 드는건 왠지.. 이거 쓸글들이 밀리네요..쿨럭쿨럭... 좋은 소재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8
언제 술 먹고 얘기해 볼까요? 홍초불닭 누룽지탕 대 환영!
Commented by -A2- at 2008/10/31 14:59
전에 본 기사지만 마음아픈 사건입니다. ㅜㅜ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9
ㅁㅏㄶ이.. 아프죠. 김su님은 잘 계신가요? (응?)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10/31 15:10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고, 그에 바탕한 포스팅을 하지 않으면, 죽은 뒤에도 욕을 볼 수 있겠군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9
많이 욕하지는 않을 거에요.. :)
Commented by imago at 2008/10/31 15:29
누군가의 블로그는 그가 세상을 떠난뒤 그의 온라인 무덤이 되겠지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9
또는 비석, 남은 일기장, 유품...
Commented by draco21 at 2008/10/31 15:36
..... 사람은 죽어서 블로그를 남긴다. (응?) ^^: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0/31 17:59
저희들은 그렇죠? :)
Commented by 서른즈음에 at 2008/10/31 20:59
한때 힘들 때,
비공개로 유언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던 적이 있었죠.
누군게 제 피씨를 켜서 블로그에 접속하면(자동 로그인) 볼 수 있게 말이죠...

그나저나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외국에서도 저런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는군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2 17:20
그러셨군요... 항상 밝은 태도를 보이셔서, 몰랐어요-
Commented by BONEUS at 2008/10/31 21:32
지금 남기는 덧글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참,, 세상이 이렇게 변했으니~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2 17:21
예, 정말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Commented by SCV君 at 2008/10/31 22:40
참 끔찍한 사고네요..;;; 덜덜..

그나저나, 누군가 블로그에다 자신이 죽은 뒤 애도를 해줄 수 있다면,
그것도 무언가 특별할 것 같네요.
다만, 그 시일이 빨리 다가오는건 원치 않지만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2 17:21
저도 원치 않습니다!! ㅜ_ㅜ
Commented by 내일의꿈 at 2008/10/31 23:17
언젠가 있을 나의 죽음 뒤에 내 블로그.. 첨 생각해보게 되었고, 많이 공감합니다.
저도 가식적으로 글 써야 하는걸까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2 17:21
가식적이 아니어도, 삶이 올발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Commented by 아이비 at 2008/10/31 23:41
저런 사고가 있었군요. 끔찍하네요... 주위에 유학생들이 많아서 섬뜩해요;

저는 고등학교때 같은 반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땐 다모임을 쓰던 시기라서 학교 동창 목록에 그 아이의 이름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미 세상에 없는데 아무렇지 않게 적힌 이름이 왠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나마 흔적이 있는것이 좋은가, 없는것이 좋은가까지 생각을 해봤어요. 어차피 나도 죽을텐데 내 블로그는 그 땐 어떻게 될지. 그래도 나란 사람이 왔다 갔다는 사실을 가장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게 블로그가 아닐까 싶어서 있는 그대로 쓰긴 하는데, 앞으론 좀 더 신경써서 써야겠네요; 아무 글이나 싸질렀다가 죽고나서 욕먹을 수도 있는일이구요; 공감하고 가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2 17:25
저도 제글 몇개 비공개로 돌려야 하나..고민중이랍니다.. :)
Commented by Raylene at 2008/11/01 00:58
친한 오빠가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뜨고,
아직도 그 오빠의 블로그는 남아있어요.
수없는 애도의 덧글이랑 함께.

그걸 볼 때마다 오빠가 생각나요.
아직도, 이글루 링크에서 지우지 않고 있는데...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2 17:25
전 제 후배 홈페이지...자주 갔는데, 얼마전에 없어졌더라구요;;
Commented by Semilla at 2008/11/01 04:27
BF는 boyfriend의 약자죠...

참 끔찍한 일이네요..

제가 좋아하는 어느 미드 시리즈에 어떤 남자가 죽어서 주인공이 장례를 치러주려고 하는데 고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애먹다가 이 사람이 활발한 인터넷 활동을 했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주인공은 컴맹..) 같이 채팅하던 사람들에게 부음을 알려주어 그 사람들이 모여서 장례식을 치르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과장이겠지만.. 현실에서 아주 동떨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2 17:25
아, 비슷한 울티마 온라인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Commented by 타누키 at 2008/11/01 09:47
사후 생각은 잠깐만 해봤는데 재밌네요. ㅎㅎ 그땐 사진 다 못올린거 올려달라고 어떻게 보정해서 올려달라고 그런거 유서에 쓸까...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 저는 이글루가 망하더라도 어떻게 계속 유지돼었으면 좋겠네요. ㅎㅎ 제사는 안지내도 도메인(?)만 살려라?같은?? ㄷㄷ
Commented by 자그니 at 2008/11/02 17:26
저도 제 도메인만! 도메인이라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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