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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7 19:02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읽고 보고 느끼다



1. 꽤 피곤했습니다. 지난 주는 정말 피곤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큰아버지께서 몸이 안좋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다녀오던 날 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큰 아버지. 거기에 겹친 원고 마감일. 장례식장에 출근하면서 일을 하는데, 대체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것일까-하는 회의가 몰려옵니다. 마감은 나 아닌 세상과의 약속이라 내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프리랜서는 정말 큰 일이 아닌 이상 일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몰려오는 약간의 서글픔. 제대로 슬퍼할 시간조차 없는 삶, 이란 것.

발인을 마치고, 방송사에 들렸다가 스윙빠로 향합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춤을 춰도 허전함은 별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날도 차갑고 마음도 차갑습니다. 뭔가, 따뜻한 술 한잔이 그리웠습니다. 몇몇 친구들에게 한잔 하겠냐고 떠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절뿐. 씁쓸하게 혼자라도 마셔야지-하고 혼자 마실 곳을 찾는데, 한 친구가 그럽니다. 마실 거면, 같이 가자고. 그래서 따뜻한 사케와 오뎅탕을 앞에두고 웃고 떠들었던 몇시간.

겨우겨우, 마음이 쉴 곳을 찾았습니다. 울 것 같던 내 안의 작은 꼬마가, 그제서야 미소를 짓습니다. 같이 술 한 잔 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기꺼이 손내밀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래도 마음은 자꾸 되묻습니다. 왜 그렇게 계속 일을 하는 거냐고.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둘러대보기도 하지만, 힘들어도 악착같이 버티는 이유가 좀처럼 찾아지지 않습니다. 전 왜 그렇게 살아가는 걸까요? 울 시간도 없이, 아파할 시간도 없이, 가끔은 내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2. 우연히 한 뮤지컬을 만났습니다. '맨 오브 라만차'입니다. 전 그냥 라만차-라는 단어를 보고 돈키호테 이야기인가-했는데, 알고보니 꽤 유명한 뮤지컬이더군요. 주연은 개그맨이었던 정성화, 알돈자 역에 이영미, 산초역으로 정상훈씨가 나온 공연이었습니다. 많이 피곤했던 탓에 졸 것만 같았는데, 정신없이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종교재판을 위해 옥에 갇힌 세르반테스, 그가 이야기하는 어떤 미친 노인 '돈키호테'의 이야기.

그런데 이 영감, 미쳐도 단단히 미쳤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원망과 동정을 한꺼번에 받습니다. 애마 로시난테가 안나오는 것은 아쉽지만, 그 유명한 풍차이야기, 주막에서의 이야기가 모두 나옵니다. 미치긴 미쳤는데, 정말 제대로 미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까지 거기에 휘말리게 만듭니다. 이야기 등장인물들이 서로, 내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를 헷갈리게 만들 정도로. ...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아졌을까요?

아니요. 뮤지컬은 그렇게 순진하지 않습니다. 그의 미치광이 노릇에 휘말린 사람들은 여지없이 삶이 박살납니다. 지겹고 비루해도 평범했던 일상이, 돈키호테의 등장으로 인해 망가져 버립니다. 그리고 돈키호테조차, 자신이 미쳐있음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와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삶은 다시 평온하고 지루하며,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옵니다. 미쳐있는 한 노인은 자신의 맹세도, 다른 누군가의 삶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3. 멋진 노래와 연기가 어우러져,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한편의 꿈을 그리다, 그 꿈이 망가져가는 모습까지 이르릅니다. 그럼 슬픈 이야기인가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삶은 누가 누구를 구해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기의 삶은 그저 온전히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그러니 내 삶이 바뀌었다고해서 누구를 탓하고만 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그리고 알게됩니다. 돈키호테는, 누군가를 구원하진 못했지만, 누군가의 삶을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는 것을.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가리 저 별을 향하여 쉽게 닿을 수 없어도
온 맘 다하여 나아가리 영원히 저 별을 향하여


그리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택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남이 붙여준 이름이 아니라, 삶이 자신에게 붙여준 이름을. 돈키호테, 둘시네아.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택할 때, 삶은 그저 그런 것만은 아니게 됩니다. 그것이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미치광이의 꿈일 뿐이라고 해도. ... 정말 미친 것은,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까요.



4. 많은 사람들에게 이 뮤지컬이 위로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이 뮤지컬은 대신 말해줍니다. 미쳤냐?란 소리를 들을까봐 잠자코 있었던 말을, 돈키호테가 대신 해줍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아- 현실을 똑바로 봐-라는 말속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자꾸 꺼내 들춥니다.

슬프고, 힘들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아니 이미 충분히 약한데도,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아 마감을 지킵니다. 밤새 일을 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겁니다. 그것이 내가 택한 길이고, 내가 택한 삶이니까요. 그래도 지금은, 조금, 괜찮다고 말합니다. 내 안에 있는 이 키작은 아이, 약하고 겁먹은 아이를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예, 나는 작고, 약하고, 멍청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 받고 싶어합니다...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유명한 사람이 되지도 못할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걸작을 쓸 수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택했고, 지금 그렇게 살아갑니다. 손가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기쁩니다. 결코 별에 가닿을 수 없을 지라도, 나는 별을 향해 따라가는 길을 택했으니, 계속 그 길을 따라 걸어갈 뿐입니다.

여전히 작고, 약하고, 멍청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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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박하나 2013/11/27 19:11 # 삭제

    괜히 찡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오라버니. 라만차가 주는 메시지 때문에 자꾸 보게 되요.
  • 자그니 2013/11/28 19:12 #

    응. 꿈은... 꿔야지. 택한 길이니, 걸어야지
  • 구름할망 2013/11/27 21:27 #

    어느 한 순간, 쌓였던 것들이 불거져 나올 때가 있지요.
    힘들었군요.
    쉬기도 해요.
    사랑하세요.
  • 자그니 2013/11/28 19:12 #

    못쉬는 것이 프리랜서의 삶이요...ㅜㅜ
  • 2013/11/28 19:3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11/30 05: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바보 2013/11/30 13:50 #

    자그니 오랜만이다. ^^ 역시 오랜만에 이글루스 들어와보니 이글이 보이네 ㅋ
    내가 지금 이런 소리할 입장은 아니다만 힘내라. 아니 힘내자 ㅎ
    내년에 아마도 1월달 쯤 술한잔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참 좋겠다. ^^
  • 자그니 2013/11/30 18:14 #

    뭔 일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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