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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5 03:38

LP판을 자르던 노인 미디어 갖고놀기



벌써 30여 년 전이다. 내가 갓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제주도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김포공항으로 가기 위해 명동에서 내려 공항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명동 입구 옛 대만 대사관 올라가는 골목에 앉아서 LP판을 잘라 파는 노인이 있었다. LP판 몇 장을 사 가지고 가려고 잘라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레코오드판 몇 장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잘라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자르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마돈나도 썰어보고 마이클 잭슨도 썰어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자르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비행기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자르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자른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비행기 시간이 늦었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비행기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자르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자르던 것을 숫제 턴테이블에다 올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LP판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LP판이다.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 비행기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한국은행 앞 분수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LP판을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잘랐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LP판이 너무 두꺼우면 음악을 틀다가 턴테이블 바늘이 다치거나 튀어나가고, LP판이 너무 얇으면 휘어지니 몇 번 안듣고 버리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진공관 앰프는 혹 진공관이 고장나면 간단히 진공관을 갈면 다시 좋은 소리를 내준다. 그러나, 요새 디지털 기기는 한번 고장이 나면 고장난 이유도 모르면서 새 것으로 교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앰프를 만들 때 좋은 부품을 골라 심플한 회로에 붙여서 소리를 테스트 한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상표를 붙인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전자부품을 써서 로봇이 만든다. 금방 만든다. 그러나 소리가 풍부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진공관 앰프를 만들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음악만 해도 그러다. 옛날에는 음반이란 것을 사면 보통 노래는 누가 불렀는지, 작곡가는 누구인지, 세션은 누가 도왔는지, 스튜디오는 어디서 녹음했는 지를 구별했고, 해외 원정 녹음한 것은 세 배 이상 돈이 든다. 해외 원정 녹음이란 미국 스튜디오에 찾아가 녹음한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대충 녹음했는지 많은 돈을 들여서 녹음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샘플링하면 되는데 일일이 해외에 나가 라이브로 녹음할 리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비싸게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음악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음반을 만들어 냈다.

이 LP판도 그런 심정에서 잘랐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음반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한국은행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분수의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LP판을 자르다가 유연히 분수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아들놈이 스마트폰에 헤드폰을 꼽고 비트를 타며 랩을 하고 있었다. 전에 더블데크 카셋트에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던 생각이 난다. 레코드판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오디오를 사는 사람도 볼 수가 없다. 프레드 머큐리도 존 레논도 감탄을 자아내던 그 팝스타들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30년 전 LP판을 자르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이글(링크)을 보다가 생각나서 그냥 잉여질 한번 해봤습니다.

* 이 글에 실린 내용은 원본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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