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드센스




2009/05/25 16:18

죽음을 다룬 영화 세 편, 러브레터, 워낭소리, 굿-바이 읽고 보고 느끼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 다른 생명의 죽음을 끊임없이 바라봐야만 합니다. 모든 것은 살아있기에, 곧 죽어가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정말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죽음이 자신에게 똑같은 가치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나 부처님같은 성인이 아니고, 기껏해야 우리 주변, 딱 팔 뻗을 만한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마음을 쏟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팔 뻗을 수 있는 거리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을때, 우리는 자주, 감당할 수 없을만큼의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수많은 영화에서, 죽음을 눈물을 쏟아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은, 그런 아픔을 마음에 되살리게 해주기 때문이겠지요...

심리학에서는 그런, 죽임이나 이별을 통해 겪는 마음의 길을 '애도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애도 과정은, 분노-부정-타협-우울-수용의 다섯가지 단계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첫번째, 분노는 원망과 미움의 마음입니다. 죽음이란 본질적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복수를 꿈꾸는 마음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나한테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내가 대체 뭔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 건지.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나 이우진 역시, 이 때의 감정이 발단이 되어 복수를 감행하게 되지요...





당신은 나였기 때문에

그렇지만 평범함 사람들의 경우, 복수를 꿈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죽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물론 말이 쉽지 그 상실감을 이겨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울증에 빠지고, 집착하게 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따뜻한 터치로 묘사가 되어있지만, 영화 러브레터에서 묘사하는 일들도, 결국 한 사람을 떠나보낸 다른 한 사람이, 그 아픔을 이겨내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의 흔적을 찾고, 과거를 회상하고, 그가 남긴 많은 것에 집착하는 것. ... 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우울해지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최소한, 그 아픈 마음에서 도망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그 우울함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평소에 보지 않았던 다른 사람이 보이기도 하고, 사랑과 믿음, 좋았던 기억과 좋지 않았던 기억, 기대와 실망이 한데 뒤엉켜 서서히 하나가 되게 됩니다. 본디 나는 몸뚱아리 하나만 가진 내가 아니라, 팔 뻗을 만한 거리에 있던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면서 당신이며, 당신이면서 내가 됩니다. 팔 뻗을 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을 나와 따로 떨어뜨려놓고 얘기할 방법을, 나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내가 슬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다 당신이 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걸요...





아파야만 낫는 것이 있다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고 잊거나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을 마음에 묻고 살아갈 뿐이니까요. 이승이든 저승이든, 한번 맺은 인연은 그리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많이 아파하고 나면, 그때서야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니까요. 상처는 아프지 않으면 낫지 않아요. 정말로.

장례가 결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삼오제가 있고, 사구제가 있고, 그리고 다시 소상이 있는 것은... 내가 겪는 아픔이 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맘껏 아파해도 된다는, 그러면서 마음이 아무는 거라는, 그렇게 천천히 달래주기 위한, 하나의 배려가 아니었을까요.

워낭소리에서, 마지막, 할아버지가 혼자 쓸쓸히 앉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아마, 그 모습이, 할아버지 나름의 장례 의식, 하나의 애도 과정처럼 느껴져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텅- 비었구나. 네가 없으니, 네가 있던 자리가, 비는 구나. 세상은 몰라도, 나는 아는 구나. 그 자리는 내 마음이 있던 자리니, 나는 네가 없는 것을 아는구나.

그리고 이제, 네가 없을 것도 아는구나...하고.





어떻게 그를 보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는 '보내지고 싶은가'를 다루는 영화도 있습니다. 납관사가 등장하는 영화 '굿, 바이'에서는, 많은 죽어간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서, 다들 모두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자신이 해주지 못했던 많은 것을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왜 살아있을 때 하지 못한 말을, 죽은 다음에야 쏟아내고 있는 것일까요.

사실 우리는 죽음을 알면서도 죽음을 모릅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누군가나, 또는 내 자신이, 지금 갑자기 하늘로 돌아간다고 해도 하나 이상한 것이 아닌 것을, 살아있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또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탓할 수는 없지요. 그게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잊어서도 안됩니다. 죽음을, 우리는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그런 것을, 언젠가는 누구나 죽어-라는 말 한마디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다르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내주길 원하는 지를... 생각하며 살아가야만 할 지도.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삶에 대한 대답은 꽤 명확하게 보여지는 면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군가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그대로,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배웅을 받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애드센스 긴배너(세로)

구글 광고 테스트


통계 위젯 (화이트)

25044682
39699
23594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