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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1 19:43

어쩌다가 나는, 혼자서 여행을- 여행/맛집 만담



여권 잃어버렸어. 같이 삿포로 눈축제를 보러 가기로 했던 친구는,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대체 왜 웃는 거야!라고 묻고 싶었지만, 묻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었을까. 그렇게 시작된 나 홀로 해외여행. 인생은 원래 힘든 거라더니... 힘들었다.

갑작스럽게 서울에서 원고를 고쳐야 한다는 연락도 날아오고, 예약한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매기도 하고, 영하 20도에서 헤매다가 감기도 걸리고, 감기 걸려 아파 죽겠는데 말이 안 통해 밥 한 끼 먹는데 1시간이나 걸리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로 이동하는데 눈사태가 나서 2시간이면 갈 길을, 국도로 무려 여섯 시간이나 걸려서 돌아가기도 하고, 겨우 도착했더니 그 아름다운 풍경은 눈보라에 파묻히고 …

지금 다시 생각해도 고생한 것만 기억에 남은 여행. 3박 4일이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줄 생각이나 했었을까. 그렇게 고생 고생하다 마지막 날 밤에, 잠시 쉬고 싶어서 들린 곳이 삿포로 역사 옆에 있는 전망대였다. 다시는 이런 여행 안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들렸다. 정말 숙소까지 돌아가기도 힘들어서 들렸다.

... 그런데 웃기지? 난 거기에서, 뭐가 좋은지 혼자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 비어있던 그곳. 지친 몸으로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있던 의자. 어두운 조명에 묻히듯 잔잔하게 들리던 음악. 따뜻한 공기. 눈 앞에 펼쳐진 도시의 불빛들. 그 불빛들이 내게, 그래도 재밌었지? 그렇게 웃으며 묻고 있는데, 뭐라 대꾸할 말이 없더라.

아아 그래, 재밌었어. 실컷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참, 재밌었단 말이지.



그때부터 나는, 혼자 여행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흔히 대는 핑계는 이런 거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다 보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그때 얻은 긴장감으로 또 몇 달을 살아간다고. 친구는 멋없게 그런 것을 낯선 환경이 주는 공포감이라고 하더라. 새로운 환경에 도착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온 몸의 세포들이 바짝 긴장해 있는 거라고.

아무렴 어때.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매일같이 접하는 평온한 일상이 주는 그런 안락감이 아니라, 조금 낯선 환경에서 걸어 다닐 때의 긴장감. 예상하지 못했던 맛있는 것들과 예쁜 것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낯선 도시를 걷다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이라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내가 혼자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내게 여행은, 그냥 낯선 곳에서 즐기는 산책. 가벼운 모험을 동반한 그런 산책. 애당초 어떤 '일정'을 짜는 것을 어려워하는 타입이라, 그냥 새로운 곳에서 무작정 돌아다니기를 반복한다. 정보는 여기에도 있지만 거기에도 있다. 거기에서 얻는 정보는 여기에서 얻는 정보와는 맥락이 다르다. 그렇게 걷다가 사람을 만나고, 통하지 않는 말로 얘기를 하고, 가끔은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내가 생각했던 상식과는 다른 세상을 만나 당황하기도 하고, 세상은 정말 넓고 재미있다는 것을 맛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기에, 주로 가까운 아시아 지역 나라들을 다녔다. 중국, 싱가포르, 일본, 태국... 사고는 언제나 일어났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거나 놓고 오는 것은 항상 일어나는 일이라 이젠 '당연하게' 여기게 됐을 지경이다. 어떤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카메라를 도둑맞기도 하고, 갑자기 알아듣지 못할 말로 화를 내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갑작스럽게 아파서 고생한 적도 있었다.... 무슨 오지를 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머릿속엔 항상, 다음에는 어느 곳으로 떠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번에는 어떤 친구들과 어떤 사건들을 만날지, 어떤 것이 내게 찾아와 줄지 기대하게 된다. 물론 별로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들은 아니다. 아무리 상상하고 기대해봐도, 늘 새로운 곳의 골목길에 접어들면 그것보다 더 재밌는 것들을 만나게 되니까. 그래도 그런 마음이, 평온한 일상을 지탱하게 만드는 또 다른 힘이 된다면, 너무 거창한 말일까.

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내게 사건과 풍경이 찾아오는 어떤 낯선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떠난다. 세상을 걸어 다니다 보면, 내가 어떤 풍경을 '보러 가는' 이 아니라, 그 풍경이 나를 찾아오는 일이 더 많았다. 고맙게도 세상은,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찾아와 준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언제라도 떠날 수 있도록 일상을 살아간다.



나는 내 삶에, 행복한 매듭을 가득 만들어두고 싶다. 다시 돌아보면 따뜻해지는 추억들을, 내 삶이란 줄기의 마디처럼. 그 마디마디에서 가지가 뻗어 나고, 꽃과 이파리가 맺혀, 친구에게 밤새 떠들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해질 수 있도록. 나야, 잘 있지? 나도 잘 있어-라고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싶게 만드는 기억. 그런 기억들을 가득히.

사실 굳이 꼭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길에는 항상 다른 이야기가 있으니까. 늘 다니던 길에서 약간만 돌아가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돌아서 가보자’-라고 마음먹는 순간, 우리 삶에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할 테니까.


덧글

  • 무밍 2016/03/01 23:16 #

    저도 그런 긴장감에 오싹한 한기와, 또는 싸하게 배가 아파올 때가 있어요.
    그런데 너무 좋아서 다시 느끼고 싶어서 4월과 6월에 가까운 일본으로 가려고 해요!
    무작정 전차를 타고 아무데나 내려 걸어보려고 합니다 :-)
  • 자그니 2016/03/04 13:50 #

    좋은 곳 발견 하시면 제게도 알려주세요~
  • 은이 2016/03/02 09:48 #

    낯선 나라에서 처음가 본 곳에서의 방황이야 말로 여행의 참 맛이죠 +_+...
    저야 내공이 부족해서 기반시설이 잘 된 국가에서 GPS켜고 돌아다니지만요 ㅎㅎㅎ
  • 자그니 2016/03/04 13:50 #

    저는 자꾸 걷다보면 뒷골목으로 가게 되서... 이게 다 구글 맵 때문입니다!
  • 나르사스 2016/03/02 14:58 #

    제가 처음 자그니님 블로그 방문한게 맛깔나는 일본여행기에 반해서였는데, 정말 그 맛이 우러나는 글이에요^^. 이번 목적은 눈 축제였던겁니까^^ (다음엔 상하이 한 번 노려보시길!!)
  • 자그니 2016/03/04 13:50 #

    몇년전 목적이요......;;;
  • 2016/03/03 23: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3/04 13: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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