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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2 23:25

블록체인 기술,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디지털 문화/트렌드



* 2017년 말에 작성한 글입니다.

1995년, 산드라 블록이 주연을 맡은 ‘네트’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주인공 안젤라는 친구 부탁으로 가벼운 일을 맡았다가 갑자기 세상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알고 보니 그녀가 받은 파일은 극비 정보를 담고 있었고, 그 데이터를 되찾기 위해 누군가가 온라인에 있는 주인공 개인 정보를 모두 지워버리고 수배 중인 인물 정보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헐리웃 영화 답게 ‘네트’는 해피 엔딩으로 끝났지만, 2017년, 우리는 그때보다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 기술은 그래서 태어났다. 쉽게 말해 이 기술은 마법 통장이다. 한 마을에 있는 주민들은 통장 하나를 같이 쓰면서 통장 내역을 모두 똑같이 복사해서 나눠 가지고 있다. 내역은 주기적으로 자동 업데이트 되며, 서로 기록한 내역을 비교해 누가 사기 치지 않는지 살피고, 새로운 거래를 승인하기도 한다.

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같은 통장을 가지고 있으니, 거래 내역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은행은 따로 없다. 통장 비교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마법 통장이 가진 특징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 가진 장점이다. 아주 강력한 보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증명을 위해 연대보증을 설 사람이나 기관을 찾지 않아도 된다.





다시 영화로 되돌아가보자. 형식은 다르지만 21세기에도 영화와 비슷한 일은 일어나고 있다.

이제 악당들은 내 정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 정보를 가지고 나라고 사기를 친다. 내 주민 번호를 이용해 특정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거나, 대포폰을 만들거나 소액 결제 사기를 저지르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아이디와 비번을 해킹 당해 SNS에 스팸 게시물이 올라가는 일을 겪은 사람도 많다.

내가 누구인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굳이 공인인증서나 주민등록번호를 대지 않아도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다면? 실제로 KB 국민카드나 롯데, 삼성 카드 등에선 블록체인에 기반한 개인 인증 서비스를 이미 출시했다.

공인인증서 대신 비밀번호 6자리를 입력하거나 지문을 입력하는 방법이 바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 개인 인증이다. 앱 하나를 활용해 다른 여러 가지 앱에 로그인 하는 것도 마찬가지. 블록체인 기반 기술은 이렇게, 이미 우리 삶에 들어와 있다.

누군가는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비트코인을 바로 떠올린다. 비트코인을 지탱하는 기술이 블록체인 아니냐고 한다. 맞기는 하지만 앞뒤가 바뀌었다. 비트코인을 위해 블록체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블록체인이 정말 쓸만한 기술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만들어봤다고 봐야 한다.

비트코인을 통해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 디지털 데이터 위/변조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보증인 없이 거래 참여자들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다시 말해 이제 큰 돈을 들여 강력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아도, 빠르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장점이 분명해지니 여러 곳에서 블록체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역시 금융업이다. 최근 해외 송금 연동 테스트에 성공한 가상화폐 리플은 은행 간 비효율적 송금 방식을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나온 가상화폐로, 해외 송금에 걸리는 시간을 3~4초 정도로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제르바이잔 중앙은행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인증 시스템을 구축중이다. 러시아는 다른 가상 화폐 거래는 정지 시켰지만 자체 가상 화폐인 ‘암호루블(Cryptorouble)’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혀졌다.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NASDAQ Private Market)은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해 실물 증권을 관리하는 장외 주식 거래소다.

한국은 어떨까? 은행연합회에선 금융결제원, 금융보안원 등과 함께 ‘은행권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앞으로 회원 포인트 관리, P2P 대출, 모바일 뱅킹, 거래 인증, 공인 인증 등 핀테크 기술과 융합하며 점점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예정이다.

위변조가 불가능한 특성을 활용해 물류업계나 전자 투표, 의료, 제조, 행정 업무에도 쓸 수 있다. 관세청과 현대 상선 등 38개 기업/기관이 참여한 ‘해운물류 블록체인 컨소시엄’이 대표적인 예다. 물류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빠르고 투명하게 물류 거래를 추적할 수 있다.

삼성 SDS는 서로 인증 수단이 다른 전 세계 모든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계약 플랫폼을 만들었고, 서울시에서는 중고 자동차 이력 위변조를 막기 위해 중고차 시장에 블록체인 기반 기술을 도입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에선 ‘블록체인 식품안전연합회’를 구성해 돼지 고기 생산 단계부터 유통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두바이에선 블록체인 형태로 행정 전자 문서를 공유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병원 각각에 보관된 진료 기록을 환자 개인이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블록 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다양한 병원에서 진료 받은 기록을 환자 개개인이 관리하면서도, 기록이 손상되거나 유출될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

중국 ‘이지안 블록체인 테크놀로지 어플리케이션 시스템’처럼 의약품 유통을 투명하게 추적할 수도 있고, 임상 시험 데이터 조작을 막는 일도 가능하다. 정부 입장에선 환자 진료 내역과 건강보험 청구 내역이 다를 때 이를 확인하기 쉬워진다.

그 밖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네덜란드처럼 전기 자전거와 소유자 이력을 블록체인에 등록해 관리할 수도 있고, 한국전력공사는 블록체인 기반 전력거래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가능성은 있지만 한계도 있다. 블록체인 자체가 어려운 기술은 아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 하나만 가지고 여러 서비스를 만들 수는 없다. 다른 다양한 기술과 융합되어야 실제 결과를 거둘 수 있고, 그 분야에선 아직 실증 실험 중이라고 봐도 좋다.

... 그러니까, 좀 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블록체인 기술로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기술로 구현할 수도 있다. 심지어 더 안정적이고 빠르게 동작하기도 한다. 블록체인 기술로 할 수 있다 말하는 것 중에는 과장된 것도 많고, 제도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들도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틈이 있다.

다시 말해 블록 체인 기술은 아직 갓난아기나 마찬가지다. 기대는 하지만 호들갑은 떨지 않는 어디 쯤에서, 차분하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 지켜볼 때다.


* 글을 쓰고 3년이 안되는 시간이 지났다.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까지 상용화 방법을 찾는 중이다.

덧글

  • 천하귀남 2020/07/13 13:26 #

    2017년 글이라 했는데 아직도 상용화 방법은 찾는 중이고 그 사이 몇 번의 대형사고도 터졌으니 생각 외로 보안이 강하다 하기도 뭐하더군요.
  • 자그니 2020/07/14 04:07 #

    비트코인이 블록체인 기술을 망(...). 핵심은 쉽고 저렴하게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인데, 그 쉽고 저렴하게가 쉽지 않네요. 이건 규모의 경제가 장점이자 단점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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