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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03:01

12월, 한 해를 정리해 볼까요? 도닥도닥 인생백과사전



오래 전 재일동포(자이니치)를 다룬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GO’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12월이 되면 늘상, 그 소설에 나온 대사가 하나 기억납니다. 주인공에게 주인공의 아버지가 권투를 가르쳐주며 하는 말입니다.

"주먹을 쥐고 손을 뻗어 봐. 그리고 빙 돌아 원을 만들어 봐.
그게 너의 거리야. 그 안에 들어오는 것은 뭐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제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겨우 이 주먹이 닿는 거리에 있는 것 뿐이라는 말도 됩니다. 마음의 욕심이야 끝 없는 법이지만, 하루하루 가지고 싶고, 읽고 보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은 쌓여가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겨우, 주먹이 닿는 원 안에 있는 것에 정도죠.

한계가 정해져 있다면 쉬 알 수 있습니다. 내 욕심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지, 어떤 것들을 지킬 수 있는 지. 어떤 이들이 살아있을 때 미리 유서를 써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또, 그만큼 알기 어려운 것이 내가 가진 넓이. 욕심은 여전히 더 가질 수 있다고 부추기는데, 현실은 지금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울먹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삶의 쉬는 시간. 바쁜 삶과 삶의 사이 사이에, 스스로를 다잡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제겐 매년 연말연시가 그렇습니다. 2020년, 올해는 특히 더 그렇죠. 시간이 사라진 느낌. 영화에 많이 나오는 '그리고 1년 후...'의 1년 같은. 생각도 많이 바뀌었죠. 되돌아보니, 제가 가진 몇 가지 정리 원칙을 아무래도 업데이트 해야겠더라고요.





연말연시, 어떤 것을 정리할까?

제가 생각하는 정리 정돈의 기본 원칙은, 역-엔트로피입니다. 간단히 말해, 모든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점점 무질서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제 책상과 컴퓨터 안의 모든 것에 다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정리정돈입니다.

어떤 것을 정리하면 좋을까요? 우선 책을 정리합니다. -_-; 이게 책이 제가 가진 가장 큰=많은 재산이라, 이 책을 정리하지 않으면 인생사 우환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즐거움을 얻고 책에서 고통을 받는다니, 아이러니하죠? 아무튼 오랜 기간 책정리를 하면서 제가 세운 책 정리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생 짧고, 읽어야 할 것들은 많고, 여러 번 볼 책들은 많지 않다. 다시 보지 않을 책은 정리한다.
  • 언제가는 결국 오지 않는다. 그때 필요하면 다시 구하면 된다. 언젠가 읽을 것들은 정리하자.
  • 내 주먹의 넓이는 책장만큼. 책장 수용량을 초과하는 책은 사지 않는다. 절대 한 칸에 두 줄로 쌓지 말자.
  • 계속 가지고 갈 책들은 개인 도장을 찍어서 표시한다(이걸 찍는 순간 중고 책방에 팔 수 있는 가격이 떨어집니다… ^^).


여기에 올해 생각한 걸 더하자면,

+ 못 읽었어도 안 읽을 거 같으면 정리하자
+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는 책은 정리하자

-가 되겠습니다.



그 다음엔 스마트폰을 정리합니다. 제가 성격이 좀 별나서 문자 메세지도 읽은 다음엔 지워버리는 성격인데요….-_-; 요즘 세상에서 스마트폰은, 제 개인이 가진 정보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잃어버려도… 울지 않도록 해둬야 마음이 편합니다. 스마트폰 정리에 대한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1년이상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던/연락받지 못했던 전화번호는 지운다.(그냥 관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 주소록/일정은 항상 구글 계정과 동기화 시켜 백업한다(이건 절대 자동 동기화).
  • 보지 않는 사진과 동영상은 컴퓨터와 구글 계정으로 백업 후 지운다(구글 포토가 2021년 6월부터. 무제한 무료 정책을 폐지할 예정이라, 대안을 세워둬야 합니다.)
  • 아이콘을 보고 어떤 앱인지 떠오르지 않는 앱들은 지운다.


스마트폰 정리는 사실상 사진, 주소록, 앱 정리입니다. 중요 사진?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게시물 형식으로 등록해 둡니다. MS 오피스를 쓰면 원드라이브에 동기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무튼 쓰는 앱만 남기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욕심도 버립니다.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도 안열어본 영어공부앱을 지우면서, 영어공부를 포기하는 거죠(...).

뭐랄까. 여행 가방을 챙긴다는 느낌으로 정리를 합니다. 어차피 들고 가야 죄다 짐이니, 꼭 필요한 것만 챙기는 거죠. 필요한 것이 생기면? 현지에서(=필요할 때) 사면 되니까요.



다음은, 컴퓨터 정리입니다.

  • 이미 본 동영상은 지운다.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와서, 파일로 보는 영화가 없습니다.
  • 사진은 외장 하드와 인터넷에 백업해 둔다. -> 꼭 이중 백업 하세요. 올해 외장하드가 고장났는데, 인터넷 백업 안했다면 20년간 찍은 사진을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 사용하지 않는 문서 파일은 압축화일로 만들어서 인터넷 하드에 백업한 후 지운다. 원드라이브에 문서 폴더 전체를 동기화 시켜서 쓰고 있습니다. + 폴더 하나에 다 집어넣은 다음, 필요하면 검색으로 찾습니다
  • 읽지 않은 정보나 이메일은 한번 흝어보고 리셋한다. 하루에 두 번 흝어보고, 그때까지 못 본 메일이나 RSS 피드는 그냥 날립니다.


간단히 말해, 요즘 세상에서 정보는 잔인하게 대해야 합니다. 언제라도 손절매, 리셋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일을 하다 보면, 쓰지도 않으면서 ‘언젠가는’ 이란 심정으로 저장해둔 자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에는 보지도 않는 자료가 컴퓨터 한 구석에서 오래 자리 잡고 있었죠.

그런 ‘언젠가는’을 모두 삭제합니다. 필요하다면? 다시 찾으면 되죠. 제가 읽고 정리한 자료가 아닌 이상 인터넷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는 자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읽고 정리한 자료는, 대부분 원고로 만들어져서 발송을 했거나 블로그에 올려져 있을 겁니다. 콘텐츠는 언젠가부터, 스트리밍으로만 듣고 보게 되서 하드에 남은 것이 없네요... (외장하드 고장나서 다 날리기도 했고요...)



그냥 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모든 것을 정리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내 주먹이 닿는 거리를 아는 것. 내 분수를 아는 것. 달리 말하자면,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가 찾을 수가 있는 것. 인생에 쓸데없이 낭비하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한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런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 밖에도 정리할 것은 무척 많습니다. 사무실 책상을 비롯해 주방, 욕실, TV 장식대의 서랍...등등 찾아보면 우리가 무의식중에 쌓아두었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편인데도, 이사할 때마다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와 계속 버리게 됩니다. 한 곳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음... 음... 힘내세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12월, 가볍게 일상을 정리정돈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많이 정리한 분도 계시지만, 시간이 남으니 잠과 식사와 게임과 TV 시청만 늘었더라-하는 분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시대를, 같이 정리로(...) 견뎌 나가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저도 지금 고민중입니다. 쌓여있는 프라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ㅜ_ㅜ 위에 있는 유니콘 건담 흉상은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손도 못대고 있습니다. 만들어야 할까요 당근해야 할까요...ㅜ_ㅜ 이제 체형에 맞지 않는 옷들은 어떻게 할지도 고민이고요. 하아- 정리할 게 이렇게 많습니다. 많아요...



덧글

  • rumic71 2020/12/12 03:21 # 답글

    디스트로이어 (리모 윌리엄스)에서 치운 노사의 가르침이 떠올랐습니다.
    "공수도란, 팔과 다리로 원을 그려서 공격을 막는 무술이지, 즉 그 원 안으로 파고들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 자그니 2020/12/14 18:17 #

    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인걸요... AT필드 같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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