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6 02:17

눈 감아야 보이는 사랑, 블라인드(2007, 2020 개봉) 읽고 보고 느끼다



영화 블라인드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친구 소환 이벤트에 응모하는 바람에 내가 당첨되어서(...) 보러 가게 된 영화. 2007년 영화인데 이제 개봉한다고 합니다. 재개봉인지 개봉인지는 모릅니다. 정말 ... 모르던 영화였거든요. 그냥 눈 먼 소년과 여성의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여성판인가? 하고 갔다는-

일단 제 평가는 시계 한 번. 예, 상영 중 시계 한 번 봤다는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좋았는데, 전반부가 조금 지루한 부분이 있고, 결말은 완전 뒤통수 맞았습니다. 뭐랄까요. 일본 단편 로맨스 드라마 본 기분. 영화 자체가 독립 영화 또는 연극 같은 느낌을 주긴 합니다. 주 무대가 집 하나라서 그렇습니다.





앞을 못 보는 성격 괴팍한 청년을 위해, 청년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는 알바(...)를 구합니다. 일하러 온 여성은 이 놈을 간단히 제압하고(?) 책 읽어주기에 성공합니다. 솔직히 로맨스 영화에 정말 평범하게 생기신 분이 나온 건 처음 봤어요. 다들 설정은 평범하다고 해 놓고 예쁜 사람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이 분은, 처음엔 조금 섬뜩하게 등장합니다. 이거 미스테리 스릴러였어?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 다음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흘러 갑니다. 성격은 괴팍하지만, 씻겨 놓고 보니 꽤 잘생긴 이 청년이,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를 제압해서라도 받아준(?) 첫 여성이니까요. 이 친구가 성격이 좀 좋게 말하면 세심, 나쁘게 얘기하면 지랄 맞아서 ... 첫 만남부터 따귀 맞고 시작합니다.



당연히 여성은 연애 같은 건 생각도 안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에게 학대를 당해서, 몸과 얼굴에 흉한 상처가 있거든요. 성형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니,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은 당연지사. 워낙 시달림을 당해서인지 자기 보호에도 굉장히 민감합니다. 괴물 취급을 받아서 괴물이 됐다고 해야하나요.

근데 이 어린 놈이 죽자 살자 덤빕니다. 나중엔 아예 집에 들어와 같이 살자고 합니다. 처음엔 미친 놈인가 싶었는데 마음이 끌립니다. 나이는 열 댓 살 차이 나지만, 아마, 그녀에게도 첫사랑이었을 거에요. 둘 다 결핍이 큰 사람이라 세상을 경계하며 살았는데, 결핍에서 비롯된 끈질김에 남자가 무너지고, 무너진 남자가 들이대니 여자도 무너집니다.

두 사람 다 타인에게. 시력 장애/흉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닌,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아 본 건, 처음이었을 테니까요. 그저 나를, 나로 사랑해 주는 사람.



그리고 이어지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인데, 이렇게 후기를 남길 만큼은 좋았습니다. 사랑하면서 변해 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예뻐서, 그렇지-하고 보게 됩니다. 관능적인데 야하지는 않은 베드신도 처음 봤고요. 다만 이런 저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지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다 풀기엔 시간이 부족한 거 알지만, 이렇게 끝낼 줄은 몰랐네요.

영화가 아니라 좋은 연극 한 편을 본 기분입니다. 그대로 연극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아요. 겨울에 어울리는, 그런 영화입니다. 다만 같은 이야기를 중년 남성과 소녀로 바꿔서 풀어냈다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겁니다. 안드로이드 로봇과 청년으로 바꿨다면 훌륭한 SF가 될 수도 있고요.

있을 법한 이야기라며, 여자 주인공에게 나름 몰입해서 봤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실은 제가 여주인공 감정에 몰입하면서 봤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여주와 같은 상황에 있었으면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을 거라는 걸 깨달았달까요. 뭐, 여주도 그래서 주위에서 욕을 먹지만.

뭔가 쓸쓸한 사랑 이야기를 찾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씁쓸한 거 말고, 쓸쓸한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