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을 하다 참세상에서 주최한 '촛불의 길을 묻는다'라는 좌담회의 녹취록을 읽었다. 미류, 완군, 노정태, 한윤형, 김현진 씨등이 참석한 좌담회였는데... 뭐랄까, 녹취록을 읽고 있는데 뭔가 굉장히 불편했다. 노정태님이나 한윤형님은 가끔 들려 글을 읽기도 하는 블로거임에도 불구하고, 대담 전체에 흐르고 있는 문제의식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럴까-하고 생각해 보니, 대답은 두가지다. 하나는 운동권-대중의 구도로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전체적으로 운동권의 무기력함을 성토하는 자리같은 느낌이었으니, 이런 구도로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하지만 참석자 다섯 가운데 넷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 아고라나 다른 블로거들, 또는 보통 촛불집회 참석자들과 '우리'라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을까?
얘들은 아직 이래서 안돼. 얘들은 아직 이런 것에 갇혀 있어. 이런저런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런저런 것은 여전한 한계야-라는 말은, 상대를 어떤 개별적인 주체라기 보단,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생각하기에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이런 말 듣기 싫으면 최소한 '어떤 사람들은'이란 식으로라도 얘기해야만 했다.
두번째는 나타난 현상을 자신들의 프레임에 꿰맞춰서 해석한다는 것. 지난 주 오마이뉴스 포럼에 참석했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현장의 다양한 흐름들을 자신들의 프레임에 꿰어 생각한다는 것은, 편하게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지루하다. 사람들이 옷입은거 해석하고, 움직이는 거 해석하고, 구호 외치는 거 해석하고- 그런데 그러면서 '이래야 하는데 사람들은 저런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묻어나온다는 것.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게 옳은데 제들은 저러네'라는 느낌이랄까.
결국 첫번째와 두번째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어떤 운동을 한다거나 더 많이 공부했다는 사람들의, 계몽에 대한 경박한 강박관념이었다. 이게 이래야 하는데, 이게 옳은 건데- 당신들이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렇지만 토론회에 이미 나온 말처럼,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소통하고 기획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득은 웹상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고라에 글 한번 올리고 호응 없어서 그만뒀다는게 말이 되나 -_-;;;
누군가의 말대로,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자(leader)'가 아니라 '전위(avantgarde)다. 필요하다면 기획을 제출하고,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가면서, 동의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체화시키는 일이다. 그 과정을 일일이 다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우습지만...-_-;; 이미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아고라에서, 블로그에서, 그렇게 제안하며 동의를 얻고, 실천하는 방법을 이미 써먹고 있다. 명박산성앞에서 비폭력을 외쳤던 일군의 사람들이 그냥 조직된 것이 아니다. 조중동 불매운동에 동참해 숙제하듯 전화하는 사람들이 그냥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제발, 계몽에 대한 경박한 강박관념은 좀 거둬달라. 나도 당신들을 '운동권'이라고 따로 규정지으며 부르기 싫다(그렇게 원한다면 기꺼이 그럴 의향은 있지만). 우리와 함께 놀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나게 놀 지를 생각해 달라. 지금 놀게 생겼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이미 우리에겐 놀이와 투쟁 사이에 구별이 없다. 아니 애시당초 정치와 경제와 문화가 갈라지는 것이 아니란 것은 그 쪽(?)이 먼저 알고 있을테니까. 그런데도 왜 자꾸 그런 고집을 부리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1.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농업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긴 하셨지만, 그 자신이 감귤과 약용작물을 키우는 농부이기도 하셨다.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할머니께 인사하러 들린 집에서, 우연히 집 뒷편의 작은 창고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호미며 낫이며 하는 농기구들이, 여전히 반짝반짝, 윤이 흐르고 있었다. 100세를 꽉 채우고 돌아가신 분이니 계속 농사를 지으셨을리도 없건만,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 농기구들은 한번도 녹이 슨 적이 없었다.
2. 작년 미얀마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을 때, 군부의 발포로 인해 9명이 사망했다. 그 가운데에 AFP 사진 기자였던 나가이 겐지도 있었다. 그는 옆구리에 총알을 맞았으면서도 끝까지 사진을 찍었다. 죽어가면서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 무릇, 쟁이들이란 그런 법이다. 정인숙 선생님에게 사진을 배울 때, 처음 들었던 이야기도 그 비슷한 것이었다. 카메라는 생명이다. 나는 다쳐도 내 카메라는 다쳐선 안된다.
3. 가수 김장훈이 태안 서해안 살리기를 위한 공연 도중, 쓰러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쓰러진 그의 모습을 보는데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몸을 다쳐 춤을 출 수 없게 되자 자살했다는, 라스트 포 원의 한 비보이도 생각이 났다. 공연 전에 김장훈이 그랬다던가? 지금 흘리는 이 땀은 더워서 나는 것이 아니고 아파서 나는 거라고.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서도 그는 무대에 올라갔다. 약속을 지키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올라갔다. 그리고는 무대위에서 쓰러졌다. ...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그는 정말, '쟁이'였다.
쟁이들에겐 '그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다. 환쟁이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쟁이는 펜으로 글을 쓴다. 사진쟁이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노래쟁이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쟁이로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쟁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을 그만두라는 것은, 살지 말라는 말과 같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놓아버리면 아무 것도 아니듯, 학자가 책을 읽지 않으면 학자가 아니듯, 춤쟁이가 춤을 출 수 없게되면 절망에 빠지듯.
4. 내 낡은 카메라를 다시 만지작 거려본다. 펜과 메모장을 준비하고, 키보드를 다시 한번 청소해 본다. 21세기의 글쟁이는 글만 써도 말만 해도 안된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편집하고 인터넷 공간의 사람들과 수다를 떨어야만 한다. 어쩔 때는 조금 피곤하다. 가끔은 왜 블로그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글쟁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글쟁이다. 그리고 블로그에는 내가 쓴 글을 고맙게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 그 정도면, 충분, 하다.
... 어차피 쟁이로 살다가 쟁이로 죽을 작정이었으니까.
타블렛을 놓지 않고 있는 친구들, 카메라를 놓지 않고 있는 친구를, 기도를 멈추지 않고 있는 친구들, 의료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친구들, 물대포에 맞으며 방패에 찍혀 쓰러졌던 친구들,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며 싸워왔던 친구들. ... 그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이만하면 됐다고 주저앉지 않겠다.
여러분은 버스, 기차, 극장과 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찾아내십시오. 보통 사람들을 따라가십시오. 동시에 최신의 발견, 발명들을 따라 잡으십시오. 방심할 수 없이 중요한 것에 숨어 있는 모든 지식을 출판하십시오. 여러분들의 직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마치 여러분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입니다.
- 무아즈 폴리도르 미요, 19세기 프랑스의 첫번째 대중 신문 「르 프티 주르날」의 창립자.
1. 많은 사람들은 좋은 정보가 사람들을 끌어모은다고 생각한다. 특히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과연 좋은 정보만 있으면 사람들이 모여들까?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좋은 정보가 된다. 구석진 골방에서 갇혀 천상의 예술을 창조해내는 예술가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모른다. 그렇다면 그도, 그의 작품도, 우리에겐 결국 '없는 작품'이다.
결국 정보는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보게 만들려고 정보도 정리하고, 제목도 그럴싸하게 뽑고, 보는 사람들이 원할 것 같은 주제를 잡는다. 하지만 정보와 정보 소비자가 그냥 만나지는 못한다. 반드시 그 둘을 중간에서 매개해주는 누군가, 또는 어떤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 결국 좋은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의 성격이 정보의 성격마저 규정한다. 맥루한의 말마따마 '미디어는 메시지'다.
2. 19세기 대중신문이 처음 등장했을때 나타났던 현상을, 우리는 블로고스피어에서 다시 목격하고 있다. 대중신문이 처음 나타났을 때의 특징이라면 '싼 가격', '사건의 신속한 보도', '연재소설, 잡보기사등 읽을거리의 제공' 세 가지로 요약된다. 대중신문은 이를 통해 "선정적인 현실을 제공하고, 새로움울 강조하고, 일상의 틀을 재현하고 짜맞"춤으로써 대중문화를 특징짓기 시작했다(1).
21세기 대중신문은 블로고스피어다. 다음 블로거 뉴스나 올블로그에 모인 블로거들의 글은, 그 글의 양이나 질이 대중신문을 대체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들은 일상에서 소재를 퍼올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깊게 파고 들어가며, 정보를 모아 재편집한다. 기존 언론에선 다루지 않을 것들도 화제가 되고,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도 보여준다.
보수 언론이 포털 사이트를 언론으로 지정해서 통제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들은 신뢰도와 경제적 이익을 인터넷에 뺏기고 있다. 지금은 오프라인에서 신문을 많이 보는 40대 이상이 건재하니 버티고 있지만, 현재의 30대 이하가 점점 성장하면서 이들의 시장이 얼마나 잠식될지는, 조금만 머리 굴려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4. 그런 의미에서, 조중동의 다음에 대한 기사공급 중단은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 사실 이들의 기사는 인터넷에서 그리 인기있는 기사도 아니었다. 제목만 야하게 뽑았지 속 내용은 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그리고 다른 매체와 중복되는 기사도 많았다. 그렇다면 동일 정보를 줄인다는 차원에서도, 이들의 기사를 싣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아마, 다음의 뉴스 이용률도 그리 줄어들진 않을테다.
처음에는 몇몇 정보가 부족해서 아쉽다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보다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에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블로거들과 다른 언론매체가 직접 나선다면, 그들이 이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그 부족함은 곧 사라질 것이다. 조중동이 빠짐으로서 생기는 공백을 메꿀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는 곧 시스템의 중요한 정보제공자로, 중심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 photo by it's_daniel
5. 어차피 네트워크상의 정보 소비는 '강한 정보' 몇가지가 아니라, '부드러운 정보'의 롱테일에서 일어난다. 콘텐츠 제공자보다 시스템 제공자의 힘이 훨씬 더 강하다. 다만 그들이 앞으로도 포털에 대해 악의적으로 기사를 쓰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을텐데, 이제까지는 뭐 그러지 않았던가. -_-;;
기성 언론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한, 인터넷의 망적 시스템이 점점 언론매체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는 한, 그리고 기성 언론이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갈등은 어쩔수 없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말자. 솔직히 말해, 무가지 메트로나 씨티-가, 조중동보다 더 많이 읽히는 시대가 아니던가.
6. 다음은 조중동 및 그 계열 신문의 기사 공급 중단에 그리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없으면, 대신 다른 좋은 기사들을 밀어주면 된다. 세상에 주목 받고 싶어하는, 어떻게든 다음 1면에 나오려고 고민하는 정보들은 널리고 널렸다. ... 그래서 포털들이 좀 권력화 되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다음이 기댈 곳은 인터넷을 더 신뢰하는 세대지, 오프라인 신문을 꼬박꼬박 구독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더 당당하게 나가도 된다. 조중동 다시 끌어오기 위해 힘과 노력을 낭비할 바엔, 좋은 글을 쓰는 블로거들을 차라리 지원해주기 바란다(응?). 지금 다음에게 중요한 것은, 블로거들과 함께할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이지, 조중동이 아니다.
MGS4의 출시를 계기로, 슬슬 차세대 게임기로 넘어가고 싶은 입질이 오고 있습니다. 이 지름신을 자제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꼭 하고 넘어갈 게임 목록을 만들어 봅니다. ... 그러니까, 이 게임 하기 전에는 차세대기로 절대 넘어가지 않을거야! (불끈) 라는 각오랄까요...
1. 용과 같이 1 & 2
얼마전 영화로도 나왔었죠? 일본어-인 것이 아쉽지만, 서른즈음에-님의 극찬도 있는 만큼, 반드시 해보고 넘어가고 싶은 게임입니다. 현재 1편과 2편을 합쳐서 파는 곳이 많더군요.
2. 여신전생 페르소나 3 & 4
예, 지난 여름부터 살거야! 만 외치고 있다가... 아직까지 하지 못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그저 PSP만 잡고 살았다니까요...;ㅁ; 이것말고도 진여신전생:녹턴-을 무척 재밌게 했던지라, 기대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디지털 데빌 사가-도 샀는데, 아직 못하고 있군요...;ㅁ;
어쨌든, 페르소나4 마저 한글화되어 발매된다니, 정말 기다리고 있습니다!
3. 탐정 진구지 사부로 : 카인드 오브 블루
역시 전작인 탐정 진구지 사부로 : 이노센트 블랙을 무척 재밌게 즐겼던 터라, 나오면 사야지! 하고 있었는데... 벌써 몇년이 흘러갔군요...(응?) ...개인적으로 이 게임을 한 다음, 시부야와 신주쿠를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했었습니다.
4. 그 밖에 사놓고 하지 못하고 있는 게임들
파이널 판타지 X-2
완다와 거상
아머드 코어 시리즈(...무려 3개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깬 적이 없다는...)
진 삼국무쌍 4 & 맹장전
에이스 컴뱃
* 그 밖에 시라츄 구락부..나, 잭&덱스터 시리즈도 해보고 싶은데, 재미있을까요? * 꼭 해봐야할 게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PS2, Xbox, GBA 등 기종 상관없이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 그런데, 아무래도 이거, 이 게임들만 해도 1년은 훌쩍 잡아먹을 듯 싶은데요 .. -_-;;; (훗, 그렇다면 차세대기는 내년으로!!)
시사인 고재열 기자의 블로그에 올라온 '오늘 조중동 1면 사진의 진실' 기사에 실린 댓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6월 29일 새벽,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다. 조중동의 1면에 실린 기사만을 그대로 믿고, 그게 아니라면 증거를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뭔가 싶어 조선닷컴에 실린 사진을 보니, 이것 참...-_-;;
이 사진만 보면, 당일 대단한 폭력 시위라도 한 줄 알겠다..정말 -_-; 이날, 시위대를 쫓아내려온 경찰이 오히려 시위대에게 포위되어 위험하게 된 일이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고재열 기자의 편을 들겠다. 경찰이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려고 했던 그때, 나는 프레스 센터 4층에 있었다. 물대포 맞은 카메라를 말리고, 잠시 쉬기 위해서였다.
잠시 쉬면서, 물맞은 카메라가 이상은 없는지 테스트 할 겸, 세종로 앞의 상황을 찍고 있었다. 시위대가 버스를 끌어내려하고 있고, 살수차가 쉼없이 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이때(40초) 경찰 버스 뒷편에서 전경들의 움직임이 잡혔다. 뭔가-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동영상으로 봤을때 1분 20초경, 진압전경들이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흩어지고 뒤로 밀렸다. 어떤 386 시민의 말대로 오합지졸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튀어나온 전경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후속 부대가 전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밀린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경이 이 시민들에게 포위된 형국이 되고 말았다(2분 40초경).
후속 부대는 나중에야 천천히 나왔다(1분 20초경). 시민들은 다시 한번 밀렸고, 이번에는 경찰이 꽤 많은 시민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심지어 프레스센터 바로 앞 화단까지 쫓아들어오기도 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경찰 지휘부의 단순한 판단 미스거나, 아니면 진압 부대의 실수였다고 믿고 싶다. 의도적 폭력 유도라고 믿고 싶진 않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경찰은 전경만 등장해도 바로 도망가 버릴 정도의 시민들을 상대로 심한 폭력을 사용했다. 사실 프레스 센터 앞 쪽은 시위 진압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전경들이 조선/동아 사옥을 지키기 위해 대치선을 너무 밑으로 내리면서, 진압이 상당히 어려운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버렸다.
그 와중에 혼자 튀어나온 전경 부대는, 분명 굉장히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독자적인 판단인지, 지휘관의 잘못된 지시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이렇든 저렇든, 결과적으로 전경들은 시위대에게 둘러쌓일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 지나가는 전경들을 붙잡아놓고 니네 좀 맞아봐라-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2. 20세기 들어 촛불은 인권운동가들에 의해 인권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어둠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빛, 거짓으로부터 세상을 밝히는 이성, 비합리적인 세상에 맞서는 합리적인 행동의 상징. 미국에선 매년 11월 23일 인권운동 축제를 개최하면서, 촛불 세레모니를 열기도 한다. 지난 봄, 티벳에서 학살이 일어났을 때, 이에 항의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열린 집회에도 항상 촛불이 놓여있었다.
3. 한국에서 대규모의 촛불이 등장한 것은 2002년 가을이다(그 전에도 집회에서 촛불을 든 적이 없진 않았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미선, 효순 두 학생이 살해된 사건의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네티즌 앙마가 제안하여 성사된 이 집회는, 2002년 월드컵때 광장의 경험과 맞물리며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효과를 낳았다. 조직된 것이 아닌 '광장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자발적 출현. 네트워크를 통해 퍼나르고 날라진,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대중의 출현. 진혼의 촛불, 저항의 촛불이 태어난 것이다.
이후 촛불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4년이었다. 그 촛불 역시 진혼의 촛불, 저항의 촛불이었다. '민주주의의 죽음'에 대한 조의와, 한나라당 마음대로 하게 놔두진 않겠다는 저항을 담은 촛불(대한민국 헌법 1조가 이때 만들어진 노래다.). 이때부터였을거다. 보수층이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고 말하며, 네티즌들을 위험한 세력으로 몰아가기 시작한 것은.
4. 그리고 2008년, 다시 거리에 촛불이 섰다. 진혼의 촛불, 저항의 촛불은 이제 비폭력 직접행동의 상징, 민주주의의 주권자인 국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민중, 민초, 시민, 아무튼 저 낮은 곳에 있던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촛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촛불은 그동안 외로웠다. 우리만 맞고 우리만 피흘리는 줄 알았다. 사람들은 그저 보수언론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렇게 홀로 타다가 무참하게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 그런데, 오늘 시국 미사에서, 신부님이 그러시더라.
'여러분, 많이 외로우셨죠'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가진 것이 없어서, 또 이렇게 두들겨 맞다가 잊혀지고, 끝나버릴 줄 알았는데, 그 순간, 희망이 다시 지펴졌다. 무관심하고 무관심하고 무관심했던 어떤 이들에게 상처받았던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됐다. 우리, 혼자가 아니었구나. 어떻게든 싸우고 뚫고 나가야, 저 대답없는 정권이 반응이라도 하지 않겠냐고,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순 없지 않냐고 다그치던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됐다.
5, 거리의 촛불은 지금, 삶의 미학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삶의 미학은 별 것이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선택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저 멀리 수도승들이나 가능한 줄 알았던 삶의 미학을, 바로 지금,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나가고 있다. 라면 하나를 골라도, 신문 하나를 봐도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먹거리 자체를 걱정하며 채식으로 돌아섰다. 스스로가 나섰던 자리를 스스로가 치우고, 스스로가 하고픈 말을 신문으로 찍어 나눠준다.
촛불 집회 현장도 다르지 않다. 필요한 만큼 모금이 이뤄지고,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먹거리와 장비들을 누군가가 가져와 나눠준다. 사람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곳에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예비군복을 입고 최전방에 있기를 자처하고, 스스로 의료지원을 나가며 밤새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이런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플랑카드를 들고 끝까지 서 있는 사람들이 있고,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올리며 현장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 촛불의 미학을 삶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사람들.